양심으로 죽은 행실을 깨끗게 하시는 예수님의 보혈
작성자명 [문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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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0.20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시고 부르심을 입은 자로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시려고 죽으사 새 언약의 중보가 되신 주님!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율법 책과 백성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려 정결케 했던 언약의 피!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그저 한 낱 짐승에 불과한 염소와 송아지,
아무런 이유도 모르고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제사장에 의해 제사에 바쳐 죽어 흘린 피가 백성과 성전 기명을 정결케 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사 자원하셔서 연약한 인간으로 33년을 세상에 불편한 몸을 입고 사시다가 채찍과 조롱과 침 #48183;음을 받으실 뿐 아니라 가시 면류관과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다 겪으시고 고통으로 절규하시다가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돌아가셨다.
그 피에 능력이 있다.
한 낱 짐승의 피도 정결케 하거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나 그 주님의 피로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이 씻음 받고 하나님을 섬기기 원한다.
나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이 무엇일까?
내 양심 때문에 죽은 행실...
난 너무 양심적이다.
지나치게 양심적이다.
하나님의 복음적이어야 하는데 난 나의 양심적이다.
그 양심이 죽은 행실은 낳는 다고 말씀하신다.
신경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하며 조금씩 나 자신의 실체를 알 수가 있었다..
사실 신경 정신과는 정신병자나 가는 줄 생각했었고(죄송~~) 또한 육신이 아닌 마음의 증상이 어떻게 약으로 조절될까? 하는 생각에 한 번 가보라는 주위의 권유도 있었지만 나 자신은 별로 필요를 못느꼈다.
남편의 개척으로 우리들 교회와 목장 예배에 참석할 수 없게 되자 짧았지만 우리들 교회에서 누리던 평강의 기쁨을 빼았겼다는 아쉬움과 알 수 없는 불안함, 답답함으로 늘 가슴이 조이는 고통으로 숨이 가빴다.
나는 그것을 내 믿음의 적은 연고라 생각하여 나의 밑바닥을 제대로 오픈하기가 부끄러워 간간이 내비치며 도움을 호소하기는 했지만 심각한 정도를 다 드러낼 수는 없었다.
홀로 아픈 가슴을 끌어안고, 믿음이 있노라 생각했던 나의 밑바닥 믿음을 확인하면서 오는 실망감과 그로 인해 하나님마저 날 버리신 것 만 같은 절망감에 너무도 괴로웠었다.
게다가 어쩔 수 없이 새로 개척한 교회 근처로 이사하면서 이사한 집의 근저당 설정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불안감과 자책감이 가중되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실컷 울기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에 지난 금요 기도에 울며 기도하는데 남편이 말하기를 오래 전부터 자신의 계모가 날마다 울며 기도하는 것에 질려있으니 자신 앞에서는 울며 기도하지 말라했다.
모처럼 실컷 울며 부르짖으려던 것마저 제지되고 말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이제는 정말 어쩔 수 없구나 싶어 지난 주 월요일에 우리들 교회 지정(?) 병원을 찾았다.
1주일 간 약을 먹으면서 조금씩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
아주 조금의 안식이 왔다.
수요일 두 번째 방문을 통해 지나치게 나의 감정을 억제한 것을 인식하게 #46124;다.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을 아주 버릇없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말.....
흉허물을 다 아는 사이가 친밀한 관계라는 말....
그래서 open이 능력이라는 것도 다시 확인하게 #46124;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화를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말씀과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 하라는 말씀에 나는 최대한 나의 감정-화가 난, 미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절제하며 혼자 속으로만 삭혀왔던 것이다.
좋은 감정은 발산하고, 나쁜 감정은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가슴에는 좋은 감정은 모두 발산하여 없어지고 차곡차곡 쌓아둔 나쁜 감정만 가득하게 되었다.
그것을 아는 나는 내 속의 나쁜 감정이 드러날까 항상 초긴장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불안하고 초조해 진다는 것이다.
이제와 보니 나는 하나님의 복음으로 무장된 것이 아니라 나의 양심과 도덕으로 무장된 것이었다.
그래서 매사에 나와 나의 가족들에게 양심을 강요하면서 살아왔다.
내 기준이 되는 양심 때문에,,, 도덕 때문에.... 지나치게 남의 시선과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다보니 나는 없고 오직 남만이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형국이다.
내가 성숙한 상태에서 남을 배려하고 헌신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낮아짐과 섬김은 사랑에 근거한 고귀한 것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셨지만 지금까지 나의 낮아짐은 나의 정체성이 배제된 비굴하고도 값어치 없는 낮아짐이었기에 죽은 행실을 낳았다.
이제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양심 때문에 죽은 행실을 깨끗게 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고 하신다.
주께서 맡기시고 천사가 흠모할 귀한 사역을 감당하기에 합당하도록 변화시키시고자 나를 빚고 계심을 믿는다.
이제 주님께서 나를 살리시고 당신의 사역을 감당케 하시고자 주신 이 고통의 터널의 끝이 희미한 빛으로 저 멀리 뵈는 것 같다.
아직도 숨막히는 듯한 갑갑함이 있지만 주님의 도구로만 쓰여지기 위한 연단이라 생각하니 감사하기만 하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주님의 보혈이 나를 정케하사 하나님 섬기기에 합당하게 하실 것을 믿는다.
그간의 고통이 또 다른 사람에게 약재료가 되게 하실 것이다.
주님!
이제 예수의 보혈로 나의 믿음이라는 포장으로 교묘히 무장된 양심과 도덕이 가져온 죽은 행실을 깨끗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지금까지 양심과 도덕으로 사람을 섬겨왔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제는 복음으로 하나님과 뭇 백성들을 온전히 섬기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