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없는 분노의 '도가니'의 함정
작성자명 [박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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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10.04
어제 영화 도가니를 보았다.
충격 그 자체...
영화를 보면서 설마 저건 극적인 효과를 목적으로 한 과장이겠지....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청소년이 볼 수도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실제의 잔혹함의 1/4 수준밖에 못 보여준 것이란다.
사단의 도구로 생명 그 자체가 악에 휘감겨 사악한 생명을 이어가는 가해자...
직장에 돈에 노예가 되어 그 악에 항거하고 나서지 못하는 괴로운 방관자.. 동조자..
정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태우며 홀로 악에 대항하는 외로운 패배자...
그리고 소리없는 울부짖음....
응징받지 않는 악...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한국이 아직도 이런 말도 안되는 악이 지배하는 곳이라니..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차마 눈을 감고 싶은 심정을 느낀다...
그리고 영화의 중간중간에 집사님들이 나온다.
그들은 가해자의 대변자들이다.
사단의 도구를 위해 법정앞에 모여 기도를 한다.
기독교는 위선의 대표주자로 그려진다.
만일 작가가. 감독이 크리스천이라면 아마 저런 장면은 없었겠지 생각해본다...
영화를 보고나서 공지영이라는 작가는 우리사회를 위해 정말 큰 일을 했구나
생각하면서도 ..
그에게 말씀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를 보고 분노의 도가니로 빠지는 수많은 관객들도 말씀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과연 그 영화를 보고 의로운 분노를 느끼는 우리는 좀 더 의로운 사람이 되는 건가...
청소년 성폭행, child abuse,라는 말을 수십년 듣고 살아왔으면서
정작 영화가 그 장면을 만들어주기전까지 우리는 그저 남의일이려니
무덤덤하게 살았다. 그냥 에잇,, 나쁜 사람,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하고 .., 잊어버렸다.
영화를 보고나서야, 실제의 1/4의 축소판이라는 영화를 보고나서야
사람들은 분노하고 바꾸라고 외치고 있다..
나도 그렇다.
함정 1. 의분을 느끼면서 내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성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나는 저정도는 아니야 라며 함께 분노한다.
함정 2. 가해자가 감옥에 들어가면 정의가 어느정도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에 밝혀졌느니 정의는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함정 3.이 분노가 지속되고 사회제도가 바뀌면서 이제는 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없어야 하며 아마 없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해본다.
말씀이 없이 저지른 죄악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말씀이 없이 싸우는 정의는 교만와 아집을 낳을 것이며
말씀이 없이 잠깐 일어나는 분노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무리 영화가 만들어지고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영화를 보고 분노하고 제도가 바뀌어도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사단의 도구가 될 것이고
가해자와 피해자는 오늘도 소리없이 어두운 곳에서 고통속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지 않는 한
가해자나, 피해자나, 방관자나, 관객이나 똑같이 패배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훌륭한 일을 했지만
그의 삶도 말씀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것의 결말이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는것...
가슴이 답답해 오지만...
오늘도 본문을 읽으면서
말씀으로 승승장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기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사도의 행적을 보면서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이 사단의 칼 끝이 나를 해하지 못함을 다시 확인한다.
범죄를 저지른 인화학교 교장은 2009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한다.
욕망의 끝은 멸망이고
말씀이 없이 사는 끝은 결국 욕망을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연약한 인생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