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지 못하는 졸음
작성자명 [최현희]
댓글 0
날짜 2011.10.03
사도행전 20:1-16
소요가 그치자 바울은 마게도냐에 가 여러 말로 제자들을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석달 동안 있다가 수리아로 가려는 계획을, 해하고자 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바울과 함께 돕는 여러 명과 드로아에 간다. 성찬식에 모인 사람들에게 밤새 강론하는 가운데 유두고가 깊이 졸다 떨어져 죽는 사건, 유두고가 다시 살아남으로 적지 않은 위로를 받는다. 바울의 지시에 바삐 움직이며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간다.
연구 묵상
1. 제자들에게 불러 권한 후 작별하는 바울, 다녀가며 여러 말로 권하는 바울, 가서 모였을 때, 밤중까지 날이 새기까지 강론하고 이야기하는 바울, 바울처럼, 권하고 또 권하고 강론하고 또 이야기하고..... 바울과 제자들처럼 긴밀한 관계로 변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2. 바울과 함께한 다른 사람들은 어디 출신의 누구라고 소개한 반면 베뢰아 사람이고 부로의 아들, 소바더라고 소개한 까닭은 무엇인가?
3. 유두고는 깊이 졸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떨어져 죽었고 다시 살아나서 위로를 받았는데 내게 이기지 못한 사건, 위로받은 사건은 무엇인가?
4. 앗소, 미둘레네. 기오. 사모, 밀레도....이 지명은 저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또, 독자에게 무슨 의미인가?
긴박한 사도의 행전.... 제자들에게 불러서 권하고 또 다녀가며 권하는 바울, 가서 모였을 때, 강론하고 또 이야기하는 바울, 또 듣고 또 들으려 모이는 제자들........ 바울과 제자의 모습은 참 긴밀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도를 사모하는 마음, 바울의 굵은 소리를 마음에 새기려는 자세, 아들 소명이는 시험 기간 공부하라는 엄마의 말에 귀가 찢어지겠다 합니다. 표현이 재미있어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가슴과 혼의 언어는 귀를 찢지 않고 잔소리는 가슴과 혼의 언어가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바울의 권함과 강론, 이야기는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변화시키지 않았을까요? 귀를 찢는 엄마의 잔소리가 변해 마음을 움직이는 간절한 권함으로, 시간을 쪼개서 끝까지 전하고 싶은 하나님의 도로 바뀌기를 기도합니다.
바로의 아들 소바더, 보통은 동명 이인이었기에 아버지와 출신을 밝히겠지만.... 바로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에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들 이름 앞에 시흥 사람 현희, 경섬의 아들 지명, 소명이는 하나님 앞에까지 갈 동안 계속 될 것입니다. 때로는 부끄러운 이름이 아니고 자랑스러운 이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앞에 계시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이 다 통과될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아들들 앞에 부모로서 줄 수 있는 영적인 자산이 유산으로 남겨지길 바랍니다.
깊이 졸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참 잘 좁니다. 그리고 졸다가 이기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졸음으로 죽음에 이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유두고가 살아나 위로를 주었듯이, 살아나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러다 죽었다 해도 그 역시 하나님이 하신 것, 적지 않은 위로란 뜻은 삶의 결과로 죽은 것에 대해, 수긍하는 무리의 자세일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결과를 보지 않고 덤으로 주신 은혜, 살아난 청년은 위로요 기쁨이었습니다. 내게 있는 이기지 못하는 사건은 아들들입니다. 아들들을 잘 양육할 수도 없고 잘 할 자신은 더구나 없습니다. 또한 위로하시는 사건 역시 아들들입니다. 직장과 동료 부부사이에서는 정말 즐겁고 신나고 부대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끼어들 때는 내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중하교 들어와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지금, 시험을 앞두고도 아들들은 철이 없어 보입니다. 매일, 잠과의 전쟁이고... 마음 한편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라는 공감과 수용이 되면서도 그래도 한 번씩 끓어 오를 때는 혈기가 나옵니다. 오늘은 마음잡고 도서관에 간다고 나섰다가 개천절 휴관일로 그냥 돌아옵니다. 아들들이 이기지 못하는 것은 졸음이고 내가 이기지 못하는 것은 아들들입니다. 유두고가 이기지 못하는 것으로 떨어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하루 종일, 아들과의 씨름에서 이기지 못하고 죽겠지만, 하나님이 살리시고 위로하시는 역사 있길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 가운데 바울이 들린 지명들이 나옵니다. 누가에게 의미있는 지명이었고 이것을 읽는 독자에게도 의미있는 지명이었겠지만, 내게는 의미가 전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의미 있었던 그 땅, 그 땅 가운데 거민, 내게도 같은 의미로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는 의미 있지만, 내게는 의미 없는 것이 무엇일까? 자라가는 여정, 천지창조를 계획하시고 예수님이 오신 이천년 전부터 뱃속에 잉태되기 전부터, 1살 때, 2살 때, 3살 때,......... 그리고 14살 오늘, 우리 아들들에게 주어지는 이 시간의 여정은 하나님께 참 의미실 텐데... 나는 그냥 지나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의미를 찾고도 기억의 창고 속에서 묻히기도 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고 스치기도 하고.... 또한 내게 주셨던 땅, 그 안의 거민.... 내가 머물렀던 그 땅, 만났던 사람, 또 내 인생의 시간과 교차되는 교점... 그 수많은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나는 잊었지만 주님이 기억하신다는 말로 들려져 감사합니다. 지금, 현재에 잘 머물며 하나님이 주시는 땅과 사람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의미 두며 살겠습니다.
1. 아들에게 권면하고 이야기할 때, 가슴과 혼의 언어를 사용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머물 수 있는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해 잘 섬기고 가르치겠습니다.
2. 아들 이름 앞에 붙어 다닐 부모의 이름이 영적 자산으로 되물림 되도록, 믿음 위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큐티를 깊이 하며 잘 적용하는 생활 예배에 승리하겠습니다.
3. 시험 준비를 위한 시간 활용을 잘 돕기를 원하지만... 내가 이길 수 없는 아들임을 인정하고 떨어지면 아멘하고 죽겠고 살리시면 위로를 전하겠습니다. 내 삶의 결과로 죽은 것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하겠습니다.
4. 내 삶의 여정여정을 주목하고 의미두시는 하나님의 눈과 마음을 기억하고 감사합니다. 지금, 현재에 잘 머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