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개혁할 때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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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0.19
히9장1절10절 [지금은 개혁할 때] 2006/10/19
웨딩 시즌이면 좀 괜찮다하는 모든 예식장들은
한 달 이상씩 빡빡한 스케쥴로 인하여 붕어빵 찍어내듯(죄송^^;)
결혼 서약한 부부들을 쏟아낸다.
온동네 잔치로 모든 이웃들에게 잔치국수 와 함께
푸짐한 음식상을 제공하는,
그날에는 동네 거지들 조차도 흥겹게 사람대접 받아가며 배불리는 날이
우리네 전통혼례방식에 있었다 한다.
멀리로 부터 온 집안 어르신들과 형제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혼인에 대한 축하를 받으며
덕담이 풍성한 혼례식은 이제 사극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충분한 여유가 있는 집안은
전통방식의 장점을 살려 축하금을 사양하고
아름다운 공간에 음식들을 마련하여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오직 베풀기에 힘쓴다.
물론 이전의 굶주린 걸인들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에 대한 배려는 평소 이웃돕기란 명목으로 잘 해 나갈것으로 여긴다.
큰일을 위하여 평소에 조금씩 부주한 것을
자신의 차례에 한꺼번에 받음으로 일을 수월히 치룰 수 있게 함도 나쁘지 않지만,
받지 않고도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있다면 그저 베품이 더 좋지 않겠는가...
좀 여유로운 일들이 주변에 많아 졌으면 좋겠다.
우리 본교회는 대형교회이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성도가 예배를 드려야 하니 주일날은 다섯차례로 나누어 드린다.
열심과 함께, 보고싶은 마음이 한결 더한다면 3부 정도로 줄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왕에 여러차례있는 예배이니
편리한 시간대에 이런 저런 이유로 모이는 부류가 은연중 나뉘어 진다.
주일학교를 졸업한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장년부로
심지어는 교역자중심, 직분자 중심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심지어는 비슷한 문화를 접하는 이들로, 가진 부유함의 정도들로도 나뉘는 듯 하다.
교회는 한 집안의 식구들처럼
갓태어난 어린아이로 부터 백발의 노인들까지 어우러져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일정 부류의 사람들만 모인것은 교회가 아닌 친목단체라고 배웠다.
안식후 첫날 모임의 의미는 부활의 주님을 기념하며,
흩어졌던 교회가 주님의 몸으로 하나되는 날이며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로 배웠다.
더하여 복음의 사명을 다시금 굳게하며 교회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준비를 하는 날로 배웠다.
이 중 가장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각 지체의 무리가
하나된 주님의 몸인것을 새삼 인식하는 것,
그래서 서로가 샬롬한지, 서로가 코람데오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 모든것에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교회사 속에서나 봄직한
몇 시간동안의 설교말씀중 모인 무리가 은혜가운데
한명의 요동함없이 가르침에 집중하던,
주님의 공생애 기간에도, 바울의 사역 시대에도 있었고
우리나라의 선교의 초기 역사 에서도 있었고,
현재 매주 우리들 교회에서 수요 예배때 마다 일어나는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은혜충만한 가운데
그러한 예배드림이 간절해 짐은 어찜일까...
나도 그러하면 좋겠다.
배가 고플때까지 들판에서 호숫가에서
은혜의 말씀을 충만히 받던 무리들,
그속에 나도 있고프다.
몇시간이고 울고 웃으며 주님의 역사하심의 은혜를 나눌 여유가 있어으면 좋겠다.
이것은 그저 세수나 하는 교회에서는 불가능 함을 안다.
목욕탕 교회가 그립다. 나 혼자 벌거벗기엔 용기가 없다.
만약 간음중에 잡혀온 여인처럼
내가 참으로 주님 앞에 엎드려진 자라면 행여 가능할까...
나의 수치가 낱낱히 드러날 지라도 용서의 은혜와 구원의 기쁨이 충만하다면
나부터 외식의 옷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
죄악 가운데 낙을 누리는 것이 아직까지 좋음으로
주님보다 사람들을 더욱 의식함으로
코람데오 하는 신앙에 미치지 못함은 아닐까...
참으로 나와 함께한 지체들을 사랑 한다면
나를 죽이며 오래 참음으로 인내한 가운데 사랑으로 권면할 수 있지 않을까...
부산의 지 교회는 성도수가 60명도 채 안되는 인원인데
본교회의 틀을 그저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개척교회의 실상은 전혀 무시되는듯 함이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정해진 시간에 꽉 짜여진 계획들 가운데
일주일이 쳇바퀴 돌아가듯 한다.
이제 그만 육체의 예법들처럼 보이는,
주님의 일이 아닌 교회의 일들로 가득한 형식은 개혁되었으면 좋겠다.
주님, 주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던
육체의 예법을 개혁함에 있어
주님의 몸으로 감당하셨던 것처럼
저도 믿음으로 의로운 병기된 몸을
오직 주의 진리의 말씀앞에 무릎꿇어, 복음에 나타나는 구원의 능력나타내며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영혼 살리는 것에 열심내기를 기도드립니다.
더하여 목숨도 내어놓을 수 있는 믿음있길 원합니다.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저를 몰아가시는 주의 성령께 순종하기를 간절히 원하며
예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