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히고 존귀한 삶
작성자명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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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10.01
오늘은 부하고 존귀한 삶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게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가복음1:17)
집사님을 뵈오니 주님을 뵈온듯 합니다. 하고 축복의 말 한 마디씩하고 꺼내고 앉으시기 바랍니다.
아빠, 엄마 사이좋게 해주세요?
세 번째 동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예닮삶을 통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나의 삶을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이 외에도 많은 기도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물질과, 가치관, 세계관을 닮아가는 우리가 예수님 닮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을 변화시켜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부하고 존귀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나라에 20종류의 직업이 있고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만 2,400만 명 정도가 됩니다.
우리의 일터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며 터전이지 영적인 것, 영원한 것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일터에서 부하고 존귀한 삶을 살아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지위가 낮을지라도 예수 믿는 사람은 뭔가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일에 대한 태도는 세 가지로 표현됩니다.
굶어 죽지 않아서 하는 생업이 있고 그 일을 통하여 경제적, 사회적 존재감을 가지는 직업이 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거룩한 일인 소명이 있습니다.
건축현장에서 벽돌을 쌓는데 어떤 사람은 내가 배운 게 없어서 이 일을 하고 있고, 이 일을 통하여서 보람을 찾는 사람이 있으며, 나 같은 분이 뭔데 예배당을 짓는데 사용할 벽돌을
쌓는데 사용할 벽돌을 쌓느냐고 감격해 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십니까?
죽지 못해서 일을 할 것입니까? 감격과 감동을 받으며 살아갈 것입니까?
어떤 소년이 구두를 닭고 있는데 그가 흥얼거리고 즐거워했습니다.
왜 구두를 닭는 일이 즐겁냐고 물었더니 ‘희망을 닭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분이 나중에 유명한 찰스디킨스입니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똑같지가 않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가복음1:17)
예수님 당시 어부들은 매우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을 택하여 사람을 낚는, 영혼을 살리는 어부로 삼았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치리한 날짜는 사십년이라 헤브론에서 칠년을 치리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년을 치리하였더라.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다윗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또 저의 왕 된 일과 그 권세와 저와 이스라엘과 온 세상 열국의 지난 시사가 다 기록되니라.>(역대상29:26~30)
다윗의 삶은 늙도록 부하고 존귀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역사의 기록된 삶을 살았습니다.
성전건축을 하는데 어마어마한 금을 준비하였습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46조 2,400억원 정도 였습니다.
제가 2005년 1월 부임하고 첫째 주 설교가 목회 소명으로 ‘누가 다음 세대에 주인이 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존귀하고 부한 사람이었으며 경건한 영성을 갖고 살았습니다.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시편78:70~72)
다윗이 처음부터 탁월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양을 지키는 자 중에서 취하였습니다.
성실함으로 백성을 기르게 하였으며 즉 경건한 영성으로 하였으며, 공교함으로 즉 탁월한 기슬을 가지고 성전건축을 준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16:7)
외모가 단정할 필요가 있겠지만, 중심에 흠 없고 점 없는 모습으로 서야겠지만 하나님은 미음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언3:4)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 겸손하시고 섬기는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공생애 시작 전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태복음3:14)
예수님은 침례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고백을 들어야 할 분이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겸손한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존귀함의 비결은 낮아지는 데 있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태복음25:40)
그 일이 작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그 일을 담당할 때 그 일속에 계신 주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요한복음13:4)
겉옷을 벗고라는 말은 계급장을 내려놓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낮아질 지셨습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마지막에는 그 험한 십자가도 지셨습니다.
더 낮은 자리에서 섬기다 보면 존귀하고 부한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이 세상의 낮은 자리, 그 섬김의 자리에 우리 모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