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hope/히7:11-19유교의 제사가 구천을 떠도는 조상(혼령들)에게 의식을 갖추는 것이라면
기독교 적 제사는 예배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개신교에서는 제사의 예법을 중시하는 미사를 하지 않고
예배 자와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을 중요시하는 교제가 핵심입니다.
제가 대 예배에 참여해 보면 가끔씩 대표기도 하는 분들이
제단을 쌓는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구약적 표현이므로
바람직한 용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첫 창조와 새 창조를 기획하시고
먼저 첫 창조를 실행하셨는데 구약의 모든 제사와 율법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래서 이 제도는 새 창조의 모습으로 변혁되고 나아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7장에서 구약의 레위지파 사람이 드리는 그 제사가
무익한 것임이 판명되었는데 왜 모세의 율법에는 레위지파를 뽑아놓고
성경에는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는 다른 제사장이 또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또한 아브라함 사건을 살펴본 결과 모세 율법을 통해 세워진 레위지파의 제사보다
멜기세덱을 좇는 대제사장 지파가 훨신 높고
저쪽은 죽은 사람들이지만 이쪽은 산 사람인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이기에
결국 어느 쪽이 높으냐는 것이 명약관화 해 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에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제사는 자연법을 설명하기 위한 실정법이니
더 좋은 소망,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가라는 말이 아닙니까,
온전치 못한 레위계통의 제사를 폐하시고 이제 새 언약을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대안에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더 좋은 소망,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온전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2006.10.16/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