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임과 거부
작성자명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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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9.26
이것을 할까 말까의 결정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저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는 늘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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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 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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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빌립보에 이어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세 안식일 - 3주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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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큰 무리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복음을 듣고 바울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을 반대하며 소동을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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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말씀을 듣고 반응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양쪽의 반응이 다를 때 혼돈이 옵니다.
누구의 의견을 따라야 할 지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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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메시아)라고 증거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고
다른 임금인 예수를 따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이 일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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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다 논리를 가지고 말을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옳고 그름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쉽게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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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그 자체로 힘이 있습니다.
복음은 그 자체로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없이도 스스로를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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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말을 할수록 거짓임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포장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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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진리에 대한 진지한 논쟁이 아니라
시기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기심의 동기로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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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진리의 힘을 나타났으나,
유대인들은 폭력으로 나타났습니다.
거리의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소동을 벌이고 사람을 잡아 위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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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주먹이 가깝기에
진리가 무력 앞에 위축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진리는 그 자체로 능력이 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진리의 위력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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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비진리 사이에 서 있을 때에
때로는 혼돈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포장을 벗겨내고
모든 수식을 걷어냈을 그때에도
진리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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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에서 진리를 찾아내기 원합니다.
거짓의 시대에서 사실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오늘 혼돈을 걷어내고 진리의 빛 가운데 들어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