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지금 있는곳이 사명의 땅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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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0.16
히 7 : 11 ~ 19
고시원에서 식사를 하거나 음식을 먹을때 식당으로 나가는데 그때 식당에 나와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데 전에는 가장 많이 섬긴분이 60 세의 남자분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고시원 생활 2 년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고 교회로도 복귀 했습니다.
요즈음은 40세된 남자싱글 인데 그는 지병이 있어서 생활보호 대상자 입니다.
국가에서 나오는 지원비로 생활을 하는데 담배도 많이 피우고, 이단교회 (김기동 )를
다녔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곳도 안나가고 있어서 만나면 예수를 믿어라,
교회에 나가야 한다고 하면 대답은 잘하는데 실천에 옮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약간 나사가 빠진듯 하고 말도 어눌하고 앞뒤가 막힌듯 합니다.
저녁식사때 보니까 반찬이 별로 없는것 같아서 내가 직접조리^^ 한 멸치볶음을 주니까
맛있게 먹었고 전을 덥혀 주니까 잘 먹었는데 만두는 먹지 않는다고 손사레를 칩니다.
왜그러냐고 하니까 대답이 없습니다. 과일이나 다른것을 주어도 잘 먹는데 잘먹었다든가
고맙다든가 통 말이 없습니다. 이제는 으레껏 그런가보다 합니다.
그는 내가 전도사인줄 알고 내가 주의 이름으로 냉수라도 한잔을 주는 심정이므로 보통은
말이 거의 불필요 합니다.
내가 그를 보면서 나도 하나님께 수많은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 감사를 잊고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것은 없는지 ...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는 공기같은 은혜를 묵상해 봅니다.
감사가 몸에 베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물한모금 먹고 하늘 쳐다
보고 또 한모금 먹고도 하늘 쳐다보는 병아리처럼 감사가 몸에 베었다면 보시기에 얼마나
좋으실까 ? 매순간 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볼수 있다면 ......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것을 기뻐하십니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못보던분이 있어서 새로만든 반찬을 조금 나누었습니다. 그는 37살이고
전에는 교회를 다녔는데 지금 삶이 힘들어서 쉬고 있고 고시원에 온지 4 일째 랍니다.
원래 집이 봉천동이고 아내가 있는데도 들어왔고 자신의 처지가 너무 초라 하다고 먼산을
바라보면서 담배 연기를 길게 품어댔습니다. 그는 나에게 자주 상담을 해야겠다고 합니다.
문제가 오니까 낙심이 되어서 예수를 바라보아야 되는데 먼산만 바라보는 그가 안타깝습
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야 하나님과 화목할수 있는데 언제나 주님께서 시간을 주실지....
아침식사를 마치려는데 방금 고시원 생활을 접고 나간 사람의 방에서 씻지 않은 그릇이
여러개가 나와서 고시원생들 망신을 시켰습니다. 기왕 설거지를 하면서 그것까지 함께 해
주면서 최소한의 도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에는 서울에 하숙이 많았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거의 고시원으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언제나 출입이 자유롭고 늦은밤이나 이른 아침에도 식사가 가능한 순기능이 있습니다.
갖가지 편의 시설이 모두 있으므로 생활의 불편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고시공부를 하는
고시생부터 수많은 사연을 안고 찾아오는 다양한 인생 장르를 갖춘곳 입니다.
그들이 한곳에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다가 때가 되면 모두 떠나갑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
가지로 영원한 도성을 가기 위하여 잠시 이땅에 머물다 가는데 고시원과 흡사 합니다.
어떤 일식집 요리사는 벌써 5 년째 이곳에 있는 왕고참이고, 어떤이는 오늘 들어온 사람도
있고 한달, 1 년..... 나는 벌써 2 년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수명과 비슷합니다.
어떤이는 수입이 좋은지 날마다 술이 거나한 잔치날이고, 다른이는 고시원비를 못내서 원장
눈치 보면서 부식비가 없어서 남이 식사할 때를 기다렸다가 끼니를 떼우고.
부모님이 보내준 돈으로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고, .. 그러나 대체로 생활수준이 낮고
제대로된 고정된 직장이 없거나 건설현장 근로자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도 나에게 허락된 사명의 땅임을 자각 합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것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것이겠기에
몇가지 적용을 했습니다. 그것은 먼저 공동밥솥에 밥이 바닥에 가까우면 내가 먹는밥같이
쌀을 깨끗이 씻어서 밥을 해 놓는것입니다. 그리고 식당에 갔을때 나와있는 그릇이나 컵을
깨끗하게 씻어 놓는것입니다. 화장실, 공동공간의 소등, 삭탁 나누기, 대화 들어주기.입니다.
무리하지 않게 접근해서 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 완전하다고 믿었으며 또한 그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었
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의 조항을 재해석해서 그들 스스로 지킬수 있는 장로들의 유전
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그림자 일 뿐입니다.
율법에는 제사제도와 인간의 행위에 대한 언급이 되어 있는데 그런것으로는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변화 시킬수가 없습니다. 엣계명은 연약 합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소금으로써의 독특한 기능을 상실한것 처럼 나역시 성도로써의
신분과 기능을 상실하면 성도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은 더 이상 성도가 아닙니다.
율법이 무익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율법의 기능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몽학선생으로써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함으로써 그 기능을 다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폐하기전에 먼저 그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율법의 완성자가 되셨습
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율법의 의가 성취되기 때문에 어떤면에서는 율법을
더욱 굳게 세우는것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찌라도 다시 율법을 지키려고 한다면 바울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는 탄식에 빠질것 입니다.
오직 나는 율법에서 나를 해방시키신 성령님을 따를때만 진정한 자유를 나에게 허락
하신 사명의 땅 고시원에서도 누릴수 있을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