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 그리스도인 의 오류 /히5:11~6:8에스더야,
아빠의 편견 때문인지 모르겠다만 히브리서를 공부하다가
모순 구절들을 발견했고 이 때문에 적잖게 고민하다가
아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면서 너랑 같이 나누기를 제안한다.
예수를 믿고 구원의 은총을 맛본 자가 다시 멸망 받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인데
히브리서 저자는 그렇다 는 쪽으로 설명하고 있구나.
한 번 비침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나니:6;4-6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10:26-29
그런데 또 다른 성경에서는 예수를 믿어 구원에 참여하게 된 자는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고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간에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니 이거야 원 난감하구나.
예를 들면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에스더야, 이렇게 상충되는 두 관점을 현재로선 그냥 그대로 인정 할 수밖에 없구나.
다만,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시는 칭의 를
히브리서 5,6장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려고 저자가 애쓰고 있는지만 살펴보자.
히브리서 저자는 1-4장에 예수님의 왕 되심을 말씀하기 위해
참 아들이면서 죽음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에 대하여 설교하고
우리의 반응을 권면하는 내용이란다.
그리고 5장에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과 함께
우리도 예수님처럼 완전한데 나가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같은 문맥을 이해하면서 오늘의 주제를 주석해 보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할말이 많지만 너희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선생=장성한 자,젖먹는 자=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고 볼 때
너희들은 여전히 젖먹이에 불과하고 의의 말씀을 맛보지 못한 어린아이 이다::5:11.12
그러니 속히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까지 나아가라:6:1 는 말처럼 들리는구나.
이 부분이 실제 히브리서 상황을 염두에 두어 두고서 하는 말인지
가상적 실제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초보를 버리고 나아가라는 뜻은 교회에 오랫동안 들어와 있었지만
기초도 알지 못했다는 의미로써
스스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 한 체로 칭의 받았다고 착각하지 말고
진짜 기초를 제대로 배우고 빨리 영에 속한 사람이 되라는
강경한 어조가 담겨져 있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만약 예수를 버리고 온전한 기초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으로도 새롭게 하여 회개 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사랑하는 딸아,
아빠가 제시한 논리가 맞다면 이제 기존의 구원의 서정이라는 패러다임에
적잖은 문제가 생겨지게 된다.
왜냐하면 한번 칭의 받으면 시간이 지난 후에 성화되고 종국에 영화되는 것으로
설명되어져 왔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거룩하지도 않은 성도가 양산되었고
워치만니의 육적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론이 인기를 끌었던 게 아니었나 싶구나.
하지만 히브리서 본문에서는 장성한 자=선생 이란 단어를 사용할 적에
믿고 난 후 오랜 시간을 거쳐서 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지도,
믿음을 의의 말씀이 무엇이고 선악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도 모르는 자들에게
값싸게 주고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천천히 살펴보기 바란다.
아브라함의 경우만 하더라도 칭의를 세번 넘게 받았던 것을 아빠는 기억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논리를 정리하면 우리는 믿는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성화 될 것이고
내 구원을 보험 처리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믿음으로 칭의와 성화를 동시에 받고
죽을 때 까지 이 상태를 유지 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에스더야,
더 자세하게 공부하고 싶다면 어네스트와이싱거의 거짓된 신자(양무리서원/1933)를
참고하거나.
결실하는 땅을 복주시고 엉겅퀴와 가시내리는 땅을 버리시는 주님,
제가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음으로 믿음이 성장하길 원합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하셨사오니 두렵고 떨림으로 매일 칭의받고 성화받는 성도가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2006.10.14/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