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품과 바나바의 품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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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9.23
사도행전 15장 36절에서 16장 5절을 보며,
바울의 품과 바나바의 품을 묵상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었다.
그것도 심히 다투었다.
물론 이유는 마가요한 때문이었다.
마가요한을 품느냐 못품느냐의 문제였다.
바나바는 품자고 했고, 바울은 반대를 했다.
바나바의 품은 넓었다.
하늘같았고 바다같았다.
태평양 같았다.
하지만 바울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별로 품은 넓은 것처럼 보이질 않는다.
하늘같지도 바다같지도 않았을 뿐아니라
어쩌면 동네 개울같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다투었다.
서로 품이 달랐기 때문에 용량이 달랐다.
그래서 의견이 같을 수 없었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일은 잘하고 지식도 지혜도 많은 것같은데
품이 그리 넓지못한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별로 영민하지도 못한 것같은데
품은, 품만큼은 한없이 넓은 사람이 있다.
하나님은 물론 이 두 사람을 다 쓰시지만,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품이 넓은 사람이 되고싶다.
일은 좀 못해도, 특별히 영민하지는 못해도,
별로 아는 것은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좋은, 품은 넓은,
바나바같은 인물이 되고 싶다.
그래서 그가 가는 모든 곳에는 화평이 있음을,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사랑이 넘쳐남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바나바가 되고 싶다.
바울같은 열심과 지혜, 지식은 애당초 없지만,
그럴바에야 바나바같은 품이라도 얻고 싶다.
로마서 15장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한다는 1절 말씀이 생각난다.
품은 아무나 넓어지는게 아니다.
강한 자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강하지 않고는 절대로 사람을 품을 수 없다.
그래서 강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약자를 품을 수 있는,
약한 자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납할 수 있는
태평양같이 넓은 품을 갖게 해달라고 또 아버지를 부르는 금욜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