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참 바빴습니다.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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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0.13
히 5 : 11 ~ 6 : 8
어제는 참 바빴습니다. 추석 연휴의 오랜 잠을 자다가 깬것 같았습니다.
오전에는 러시아 소빈폼코리아로 가서 미팅을 하고 점심후에는 콜롬비아로 전화를
해서 그간 진행된 광산건을 점검하고 자금펀드 전문가를 만나서 의뢰를 하고
중국심양 장로님과 통화를 하고 제철회사 방문을 의논하고 송파에 있는 일본 기계
관련 무역회사에 들려서 회의를 하고 터키 철강산업 전시회 관련건으로 터키대사관과
통화를 하고 자료를 메일로 보내고 방배사무실로 돌아와 건설시행 현황을 들었습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서 뒤돌아보니 행보가 가히 국제적이었습니다.
지하철 정기권으로 서울 시내를 뱅뱅 돌았지만 마음만은 부 ~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으로 어찌 행하실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변한것이
있다면 이제까지는 소극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부터는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는것
입니다.
믿음에도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젖만 먹던 시절에서 장성하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되듯이 이제 방배사무실에서
기다리고만 있던 시간은 지나간것 같습니다.
운동선수는 열심히 훈련을 받음으로써 기록을 갱신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꾸준히 공부를해야 성적을 올릴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같습니다.
이미 신앙의 경주장에 나간 내가 훈련을 하지 않을뿐더러 경기하는중에 게으름을 피우면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은
나는 아직 내가 잡은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신앙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는 도의 초보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란 율법이나 세상 철학에 사용했던 초등학문과는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도의 초보는 예수를 처음 믿을때 기본적으로 배우게 된 신앙의 도를 가르킵니다
도의 초보를 버리라는것은 교훈의 터 에만 머무르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가란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에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가기를 포기하고 계속 도의 초보에 머물
려는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의 문제점은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정상적인 것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에게 이런 모습은 없는지 ?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적당히 공예배만 참석하고 큐티하는 교회에서 큐티를 게을리하고 적용은 없고...
공동체의 봉사를 소홀히 하며, 각종 신앙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한다면 초보 입니다.
또 신앙의 진보를 이루려면 외적의식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외적 의식에 집착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중세 카톨릭이 신앙의 본질을 상실 하였기에 의식에 치중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은 신자들의 고혈을 짜내어 크고 웅장하며 화려한 예배당을 건축
하였으며 이미 죽은자들을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면죄부까지 판매 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형식화 될수록 본질보다 외형에 더 신경을 쏟습니다.
그렇다고 의식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균형이 문제입니다.
나는 신앙생활에 외적 의식에 집착하지는 않는지 ?
나의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의식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버려야겠습니다.
신앙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타락의 길로 돌아가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힘들때면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끊임없이 체험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진보를 이루지 못하고 계속 같은 신앙상태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조그만 시련만 있어도 지도자인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 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생활을 동경하고 그 삶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각종 사건의 옷을 입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고난이고 핍박 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면 안됩니다.
사건을 원망하고 교회생활에 활기가 떨어지고 전도자나 목사님이나 하나님을 원망하면
즉 사망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애굽에서 구출 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나
내가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유나 약속의 땅에 대한 비젼은 상실하고야 맙니다.
내가 신앙의 진보를 이루기를 원 하다면 끊임없이 닥치는 시련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분별하도록 노력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내가 신앙의 진보를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면 날마다 패배하게 되며
세상 사람들보다 더 비참하게 살게 될것 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게 하라는
권면을 아멘으로 받아 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