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텃세
작성자명 [미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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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9.20
행 15:1-11
유대인, 특히 바리새인중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어떤 사람들은
이방인들도 당연히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브라함 이래로 대대 손손 내려온 하나님과 의 약속을
전통이 뭔지, 예절 법도가 뭔지도 모르는 신출내기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느니 마느니 맘대로 지껄이는게 통 못마땅하다.
바울 너 말 잘도 한다. 근데 난 하나님을 더 잘 알아. 할례는 해야되는 거야...
혹은 텃세일까?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유대인인데
감히 이방인인 너네들이 믿으려면 적어도
할례정도의 아픈 의식은 감수해야 한다는 심보였을까?
본질은 우리가 늘상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포함한 예수님으로만 구원이 된다는 것이겠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꼭 해야 한다고 한것은 비본질적이다.
이방인이 스스로 원해서 할례를 한다면 말릴 일은 아니지만.
유태인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은 할례를 하지 않나? 궁금해지네...
우리교회 목사님이 몇년전에 말씀하셨단다.
성가대원은 예배를 집도하는 자로서 일반 성도와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
그러므로 맨발은 안되고 소매 없는 옷이나 끈#50618;는 슬리퍼 형식의 구두도 안된다...
목사님께 한번 여쭤 보고픈데 지금 편찬으셔서 안계시다.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
한 10년전쯤 말씀하신 것을 지금까지 고리타분하게 적용하는 것은 아닐까?
그 말을 내게 굳이 해준 권사님이 나를 싫어하는 마음으로 말한 것이 못마땅하다.
페디큐어를 예쁘게 칠했는데 어찌 발등까지만 오는 스타킹을 신을수 있는가.
그건 발을 촌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신은 반짝이는 슬리퍼는 어떤 교인이 신은 것을 보고
같은 것으로 구입한 것으로 구두와 같은 것이지
해변가나 집앞에서 질질 끌고 다니는 슬리퍼가 아닌 것이다.
기분 나빴지만 다음주 결국은 새로 샌들을 사서 신고 갔다.
권사님에게 반항할 자신이 없어서.
작년에 예배드릴 때 우연히 몇차례 옆에 앉게 된 성도가 있다.
그녀는 나와 같은 메이커의 가방을 더 큰 것으로 들었고,
내것보다 훨씬 큰 보석을 끼고 달았으며
누가보면 무슨 마담 같은 야하고 번쩍이지만 고상하지는 않은 분위기의 사람이였다.
나는 그녀에게 특별히 친근감을 느꼈다.
왜냐면 교회는 다양한 사람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왠지 그녀야 말로 교회에서 겉돌것 같아서 였다.
나는 당신에게 호의적입니다라는 의미의 미소를 보내 주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녀가 요즘 통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4부 예배에 무스탕을 부릉 부릉 굳이 소리내며 타고 오던
대학생도 요즘은 안보인다. 서운하다.
우리 딸과 함께 현지 교회를 간적이 있다.
친구를 데려 왔는데 정말이지 잠옷 같이 파이고 짧고 비치는 옷을 입고 왔다.
예배를 마치고도 조마조마했다.
혹시 오늘 첨 교회나온 딸 친구에게 누가 뭐라고 할까봐서.
난 쪼리를 신고, 핫팬티를 입고라도 예배보러 오는 것이 이쁘다고 생각한다.
그 권사님처럼 그냥 자기랑 다른 류의 사람이 싫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이들은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어울리는 것을 보고
안도감을 느낄수도 있을 것이다.
내 항변이 아니라... 정말 교회는 본질은 고수를 해야하지만
비본질의 것은 포용하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느날 양말을 안신은 것이 하나님께 불경스럽게 느껴져서
꼭 신어야 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도 신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목사님이 내게 양말을 꼭 신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신다면
물론 순종하는 마음으로 양말을 신을 것이다.
(아! 그런 꼼짝 못할 권위가 그립다.)
나는 요즘 자주 외친다.
하나님, 제가 교회에서 고참이 되도 절대 텃세 안부리겠습니다. 라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