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거룩한 사명감
작성자명 [미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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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9.19
행 14:19-28
조금전 까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보고 그에게 제사하려고 했던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멀리서 원정온 유대인에게 죽기까지 돌로 맞고 성밖으로 내버려진다.
만진창이 몸을 하고서도 계속 복음을 전하면서
그를 죽이려고 했던 루스드라를 비롯한 성들을 순회 방문하여.
전도된 성도들에게 마음을 굳게하여 믿음에 거하라고 권면한다.
전에 사도행전을 읽을때는 건성으로 넘겼던 구절이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주님이시니 돌을 맞았어도 살아나는 것이 뭐 큰 일인가 하고...
큐티식으로 읽으면 다르다. 해설을 읽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꼼꼼히 읽고 또 읽으니
바울의 삶의 목적이 여기서 나온다. 살던지 죽든지 나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고 기절했다가 깨어난 바울의 모든 관심은
복음 전파 뿐이였다. 몸이 회복되기 까지는 휴식이 필요했을 텐데
전도한 신도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권면하는 여행을 계속하였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이 다 순교하였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문득 엔도 슈샤꾸의 침묵이 생각난다.
하나님 왜 보고만 계십니까. 왜 아무것도 안하십니까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하나님의 그 맘을 알것 같다.
아직은 말로 잘 정리 할수 없지만..
8월은 무지 행복했다.
유학간 아들이 방학동안 와서 내곁에 있는 것 만으로 행복했고,
회사가 바빠서 감사했고, 직원이 입안의 혀처럼 일을 잘해주어 기뻤다.
교회생활은 즐거웠다.
지난 많은 시간들 동안 눈물을 흘리며 씨뿌렸던 것을 기쁨으로 거두는 듯 했다.
열매를 따 바구니에 담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이제 추석도 지났다. 벌써 9월도 반이 훌쩍 지나갔다.
늘 하나님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 해왔으니
주님이 주신 축복을 빨리 나누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인다.
엊그제는 교회의 한 집사님이 이사 가길래 얼마를 봉투에 넣어 주었다.
그이 에게 전화를 하니 사람을 불러 지금 막 정수기를 달았다고 했다.
오잉? 나는 정수기 다는거 아까와서 수돗물 끓여 먹는데...
사실 나의 회사 임대료는 한 1년 밀려있다.
조금 아까울뻔 했다.
아직 하나님의 싸인을 모르기 때문에 어디에 어떻게 좋은일을 해야는지 잘모른다.
어느게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인지 내 가벼운 선심인지 모른다.
그 집사님이 형편도 어렵고 아들에게 잘 낫지 않는 병이 있어서
그냥 말 뿐이 아닌 위로를 해 주고 싶은 생각이 일주일 전부터 계속 들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만일 도우라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가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면 안될것 같았다.
돈으로 남을 조금 도와 주는 것은 오히려 쉽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내가 전도하려 했던 사람에 대한 부담감에 조급해진다.
그들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내 금쪽같은 쉬는 시간을 내어서
교회로 이끄는 일은 더 어렵다.
또 내게 위로를 받았던 공부 못하는 학생이 생각 난다.
나에게 남을 위로해 주는 탈렌트가 좀 있는 것같기도 하다.
그렇담 열심히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3)는 말씀처럼
바울은 사랑으로 구제하고 전도하고 몸을 불살랐다.
나도... 조금이라도 바울을 본받고 싶은 거룩한 부담감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