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일만에 잠시 누리는 다른 안식도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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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0.11
히 4 : 1 ~ 13
히 4 :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
내가 누리는 안식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때 누립니다.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예배 드리는 일이 곧 나의 안식 입니다.
이 안식은 믿음으로 화합해야 누릴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지체들과 화합이 없이
드리는 예배나 혼자 드리는 인터넷 예배는 안식이 없습니다.
내가 누리는 안식은 영적, 육적인 투쟁으로부터의 쉼 입니다. 예배를 드릴때나 말씀묵상
( 큐티 ) 을 할때는 모든 육체적 노동을 쉬고 영적인 투쟁까지 멈추고 쉼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잠간씩 누리는 또다른 안식이 있습니다.
일산 삽다리에 있는 성모병원으로 혈압약을 타러 갈 때 입니다. 3 년째입니다.
요즈음 병원의 처방전은 28 일분 약을 줍니다. 그래서 28 일만에 한번씩 날자를 맞추어
일산을 가는데 가는 코스가 일정 합니다.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76 - 1 좌석버스를 타고 가는데 나는 갈때마다 약간의 음료를
준비 합니다. 원래는 일산을 전혀 몰랐는데 그곳의 개척교회를 섬기다 보니까 인연이 되어
7 년을 하루같이 지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개척멤버들이 서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잠실대교를 건너서 한강대로를 타고
올라가서 행주대교를 건너 구 일산으로 들어 갔었고 후에는 지하철로 대화역까지 가서
픽업 받아 간곳이 가좌마을 이었습니다.
후곡마을, 강선마을, 성저마을, 덕이동, 로데오 거리, 호수공원, 마그넷사우나, 농수물센타
........ 이어지는 곳곳에 교회의 흔적과 추억이 숨어 있습니다.
어제는 들판의 누런 벼가 다정하게 속삭이며 인분냄새까지 곁들여 질때 나는 내 인생을
이것저것 살펴보는 귀한 시간으로 채우며 색다른 안식을 누리고 왔습니다.
내가 가는길이 혈압약을 타러가는 길인데 그것이 내 삶의 결론이고 혈압은 정상이었지만
나는 또다른 암이나 합병증으로도 죽을 수도 있고
내가 소망으로 삼았던 일들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고 그냥 이대로 끝날수도 있으며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 할 수도 있는 오늘이 나에게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것을
새삼 깨닫게 되니까 한날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이라는 선물을 믿음으로 누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약타러 갔지만.....
창밖에 보이는 도시와 시골의 각기 다른 풍경들을 보고, 먼산, 가까운 들을 보며 기도도
하지 않고 창문을 열어놓고 바람을 얼굴로 맞아가며 시원한 음료를 한모금 마시면
도심빌딩에 막혔던 가슴이 확 ~ 트인것 같았습니다.
성경에는 천지창조의 기사로부터 안식을 주제로 하는 사건이 많습니다.
그런데 안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가르키는지는 별로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땅에 정착하는것을 안식으로 생각 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안식으로 생각하는지 ? 돈, 출세, 사랑, 결혼, 자녀, ......등등
그들이 가나안에서 얻은 안식은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자유인으로써의 안식 이었습니다.
그들이 안식에 들어 갔지만 주변에는 대적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고생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진정한 안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하셨습
니다. 즉 자기에게 오는자에게 안식을 약속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오는자란 예수님을 믿는자 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안식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비록 그 안식이 장차 있을 영원한 안식에 대한 그림자였을 지라도 그들은 믿음으로 화합
하여 약속의 땅에서 안식을 누렸습니다.
이렇듯 안식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화합해야 합니다. 예배공동체가 중요 합니다.
믿음이 좋은 지체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위에 안식이 강같이 흐르는것 입니다.
믿음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고, 믿음은 내가 안식을 얻는 조건 입니다.
안식이나 구원이나 믿음을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으면 안식이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후에 제 칠일에 안식을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도 제칠일에는 육체적인 일로부터 안식을 취하도록 명령을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자가 죄에서 비롯된 육체의 고통에서 해방될것을 예시하신것
입니다. 나에게 약속된 마지막 날의 부활은 궁극적으로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입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내렸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고통은
끝 났습니다.
죄는 나에게 육적인 고통만을 가져 오는것이 아니라 선한것을 추구 하려는 나의 의지와도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나는 죄와 더불어 끊임없이 투쟁을 해야 합니다.
이 투쟁이 있는한 나는 안식할 수가 없습니다. 이땅에서 영적투쟁을 다 한후에 안식을
얻을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죄와 투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을 얻을수 없습니다.
의식주 문제나 자녀문제가 해결 되었다고 평안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살아야 하기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만 안식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잠시 당하는 육체적 고통과 영적투쟁을
인내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안식이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