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뉴스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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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0.09
제목 : 형님뉴스
성경 : 히2:10-3:6
요즘 형님뉴스 가 무척이나 재미있다.
개그프로그램을 보지 않던 내가, 형님뉴스 를 보면서 많이 웃는다.
뉴스가 뉴스다워야 뉴스지!
저 길용이여라
형님 뉴스는 할 말은 합니다.
시사와 웃음을 함께 주는 형님뉴스 의 팬이 되어 버렸다.
내게 형님 이란 단어가 무척이나 낮설다.
입밖으로 내 #48183;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다.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의 언어에서 나오는 칭호인데, 낮설고, 힘겨운 단어가 되어 버렸다.
오늘 본문이 형님뉴스 다.
믿음의 맏형이신 예수님에 관한 뉴스다.
형님이 형님다워야 형님이지!
형님이란 칭호를 듣기 위해서는 형님다워야 한다.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의형제를 맺는 경우가 많다.
유비와 관우와 장비가 도원결의를 하며 의형제를 맺었고,
드라마 주몽에서도 그를 형님이라 부르는 마리, 협보, 오이가 있고
연개소문에서도 그를 도울 동생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사극을 보면은 주인공 옆에는 그를 형님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형님의 형님다움이 있기에, 생사를 같이하며 주군으로 섬긴다.
예수님께서 형님이 되어주셨다.
맏형이 되어 주셨다.
거룩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고,
육신을 입고 내려 오심으로 믿음의 아우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시험 당하는 자를 위로하기 위해 먼저 시험을 당해 위로자가 되어 주셨다.
형님의 형님다움을 몸으로, 희생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오늘 말씀 속에서
형님을 형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주님을 주님이라 부르지 못하는 나를 본다.
나의 모든 것을 의탁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어렵다고 털어 놓지 못하는 나를 본다.
그러기에 헌신이란 단어도 무색하기만 하다.
나를 아끼는 믿음의 형님들도 많이 있지만,
여전히 내 입술은 형님 이란 단어에 인색하기만 하다.
예수님을 형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주님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슴 깊은 곳에서 부르는 형님이란 친근함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족하는 마음이 걸림 돌로 작용함을 본다.
부족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 없이 살아가기에 의지할 대상의 필요도가 낮은 나를 본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죄의 대가를 치루어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큰데,
죄에 대한 의식이 낮기에 그 은혜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나를 본다.
고난이 작기에 고난 당하는 자를 위로하시는 예수님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내가 걸림돌이 되어,
믿음의 형님되시는 형님을 형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주님을 주님이라 부르지 못하는 지금에 이르렸다.
선감단 일을 하면서 나를 형님이라고 하면서, 나를 잘 따르는 친구가 있다.
어제도 추석 안부의 문자를 보내왔다.
3개월을 같이 일하면서,
형님, 형님하면서 깍듯이 형님대접을 해 주었다.
그 친구를 통해 형님 이란 단어가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나도 그 친구를 잘 대해 주었다.
더 주고 싶고,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형과 아우의 우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을 잘 따르는 아우를 더 잘 챙겨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예수님도 형님이라 하고, 주님이라고 따르는 사람을 더 귀히 여길 것이다.
주님을 주님으로(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섬기고,
형님을 형님으로 섬길 때에, 하나님의 안에서의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님!
주님이란 단어도, 형님이란 단어도 제게는 낮설게 느껴집니다.
제 자신이 걸림돌이 되어, 스스로 재갈 물리는 꼴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과 헌신은 충분하고 완전한데,
그것은 체감하지 못하는 저의 영혼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형님이란 친근한 단어를 배우게 하시고,
주님을 주님답게 섬기는 법을 배우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