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포기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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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9.15
사도행전 13장 13-31절을 보며, 중도포기를 묵상한다.
마가요한은 중도포기를 했다.
바울을 따라 전도여행을 갔다가 버가에서 돌아가고 말았다.
눈앞에 보이는 험한 길,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가는 길이 자신없었던 까닭이다.
아마 그전까지 지나온 길,
수리아 안디옥을 지나 배타고 구브로에 가는 길도 만만찮았을테고,
구브로에서 다시 밤빌리아의 버가로 오는 길 또한 만만찮았을게다.
그래서 결심했었을게다.
안되겠다고, 포기해야겠다고.
여기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인생사 사는 것도 그렇다.
신앙생활하는 것도 그렇다.
약속믿고 기도했는데,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린 실망한다.
열심히 바둥거리며 살아왔는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결과가 좋지 않거나 희망이 없어 보일 때 우린 낙담한다.
하나님이 안계신 건 아닌가.
하나님이 계신다 하더라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중도포기를 하고싶을 때가 있다.
교만이라고 했다.
정필도 목사님은 그것을 교만이라고 했다.
그분은 말한다.
교만이란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일을 자신이 평가해 버리고,
하나님께서 영광받을 그것을 자신이 가로채는 일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생각하는 것 역시 교만이다.
교만에 대한 그분의 정의다.
그분의 책 < 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진다 >에 나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만때문에 중도포기를 한다.
하나님의 평가는 아직 멀었는데 자신이 지레 평가를 한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나의 것과는 높고도 다른데,
내수준에서, 내눈높이에서 미리 생각하며 예단하는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중도포기를 한다.
중도포기를 하기 때문에 자살을 한다.
내일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닌데,
내일 일은 난 모르는데,
내일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우린 전혀 알지 못하는데 말이다.
마가요한의 중도포기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역시 사람이었구나.
그 역시 약한 점이 많았었구나.
어쩌면 그렇게도 나와 유사할까.
그래서 또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가 도와주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붙들어주지 않으시면 나 또한 중도포기할 수밖에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