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추석
작성자명 [신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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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0.07
수요예배 김형민 목사님의 말씀
나의 형제 골육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사도 바울의 고백이
이틀 앞두고 골육 친척을 모두 만나는 명절의 상황에서
우리 모두의 간절함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함께 올려 드리니
눈물이 펑 터진다.
하나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세요. 두 손을 더욱 높이 들었다.
추석 하루 전날,
앞치마를 챙기고 딸 지혜나를 대동하고
아침에 역삼동에 사는 친정 오빠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벌써 청소를 말끔하게 마치고
단아한 모습으로 부침개를 시작하고 있는 올케 언니,
연이어 일찍 온 나를 보고 놀라는 모습으로 막내 올케가 오고
오랜만에 딸이 있어 뿌듯한 표정으로 천안에서 친정 엄마가 오시고
녹두 빈대떡을 부치고,
나이 여든 골다공증 척주 환자인 엄마가 배낭에 짊어지고 온
야들 야들한 김치로 무친 비빔국수를 해 먹고
송편을 닷 대나 빚고 찌니 어느덧 초저녁이 되어
올케를 위해 일찍 나오니
오빠가 흐뭇해서 밖까지 나와 잘 가라고 한다.
내일 전투를 위해
체력과 기도를 하기위해 앞 산에 가서 한 시간 운동을 마치고
딸과 함께 밤에 내일 큐티를 했다.
롬 16장 19절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지금까지 내가 근심이 많은 것은
악한 데 머리를 심히 굴린 탓이라는 깨달음이 왔고
내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선한 일에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구했다.
감사하게도 20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약속해 주셔서
소풍 가기 전날처럼 부푼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동역자가 되어 함께 기도하고 순종하는 딸 지혜나가
누구보다 든든하고
양육 시켜 준 많은 우리들 교회 청년목자들께 참 감사하기만 하다.
가끔 지혜나의 high fashion으로 티격태격하고 언성이 좀 높아 질 때도 있지만....
일찍 일어 났는데도 제사 시간을 어떻게 맞출까 신경 쓰다가 늦어버리고
1층이라 살짝 밖에서 보니
아직 절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위가 뒤틀리고 아프기 시작한다.
너무 긴장하고 신경을 썼나?
지혜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긴 치마를 허락 받아 입고
기분이 좋아 여유있게 엄마 괜찮아 하고 걱정해 주고,
딩동 벨을 누르고 들어가자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고,
작년 추석에 교회 가자고 했다고 집을 뒤 엎어 놓은 사촌 올케가
아이고, 형님이 오시니 어머님 얼굴이 환해 지시네요 한다.
옆에서 작은 어머님도 그럼 딸이 최고지 하면서 거드시니 감사했다.
배가 아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앉아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폭탄 선언을 하신다.
내가 죽으면 우리 교회 목사님이 장례 다 알아서 하실 것이니 그리 알아라
제사고 뭐고 그런 것 절대 하지 말아라
갑자기 찬 물을 끼얹듯 조용하고
교회를 다니시는 작은 어머님께서
이제보니 형님 참 믿음이 좋으시네요
유언으로 받아야 겠네요 하신다.
그러자 오빠가 무슨 소리예요! 목사가 주관하다니 아들들이 해야지요 한다.
한 달 전 벌초하러 아버지 묘에 갔다가
심장 이상으로 앰브란스를 타고 응급실에 간 오빠가
엄마 장례식을 자기가 주관하겠다고 하니 모두 조용하다.
항상 목소리가 크고 나서기 좋아하는 막내 올케가
어머님이 말씀 안 하셨으면 돌아 가신 뒤에 싸울 뻔 했네요.
어머님의 말씀을 따라야지요 한다.
나는 얼른 엄마 말씀대로 할께요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더 이상 아무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제일 윗 분인 작은 아버님도 조용하시고
두 아들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드디어 평강의 하나님은 사단을 나의 발 아래서 상하게 하셨다!
15년 전,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돌아 가시고, 엄마, 오빠와 세 남동생
아무도 믿지 않는데 선교를 간다고 할 때
어불성설이라고 비난한들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공항에서 하염없이 우시던 어머니.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왜 그렇게 끝까지 속을 썩이는지
학교 다닐 때부터 엄마를 위염까지 걸리게 하고
반대하는 가난한 집 팔 남매 맏며느리로 내가 시집 가는 날
목 놓아 우시던 친정 엄마.
그리고 이번에는 선교를 한다고 후진국으로 훌렁 떠나 버리는
불효 막심하고 배은 망덕한 딸년.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 나에게,
사랑하지 못했던 춤바람 난 친정 엄마를 용서하게 하시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그리고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간곡하게 복음을 전하고 딸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며느리들은 우리 엄마의 별명을 얼음 여사라고 부른다.
엄마는 필리핀에 관광을 오셔도 우리 집을 방문하지 않으셨다.
엄마 친구 딸이 필리핀에 살아, 함께 딸들이 있는 곳에 가보자고 해도
믿음이 없는 엄마는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 딸을 보기 싫다고 마다 하셨다고 한다.
선교지에 간지 8년 후 갑자기 집에서 소식이 왔다.
엄마의 자궁 암
갑자기 혼돈이 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는 정말 내가 효도할 시간이 온 것이 아닐까?
엄마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나는 금식 기도에 들어 갔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 말씀으로
하나님은 날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평강으로 지켜 주셨고
또한, 엄마의 마음과 생각도 평강으로 지켜 주시고
구원의 믿음을 주실 것을 믿었다.
며칠 후 엄마에게 전화를 드리니
교회에 간다고 하신다.
할렐루야!
엄마는 워낙 건강하셔서 수술과 항암 주사까지 겸하셔도
머리하나 상하지 않으시고
75세가 되어도 전철 승무원이 주민 등록증을 제시하라고 한다.
지난 봄, 엄마는 또 척추 수술을 하셨다.
의사는 엄마가 골다공증이 심해 뼈가 솜이라고 하고,
게다가 당뇨에 합병증으로 심장병까지 있으니
79세에 그야말로 수술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우리들 교회에 기도제목을 올리고
수술 전날 밤, 김정미 목자님이 오셔서
구원의 확신을 점검 했는데 또렷하게 예수님을 시인하신다.
나는 하나님 말씀을 이루어 달라고,
엄마가 아들들 구원의 통로가 되도록
생명을 연장 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의사도 장담하지 못하겠다고 한 수술
엄마는 최고령에도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뛸 듯이 걸어
주위의 환자와 의사를 놀라게 했다.
한 달 전 남편과 함께 혼자 아파트에 사시는 엄마를 찾아 갔다.
감자 탕을 맛있게 끓여 가지고.
나는 남편도 있고 신이나서 그 동안 하기 힘든 말을 꺼냈다.
엄마, 돌아가실 때 꼭 아들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유언하셔야 해요.
그리고 장례식도 천국가시니 교회식으로 한다고 미리 말씀하시고요.
그렇지 않으면 오빠랑 나 싸워요
평생을 효도는 커녕 속만 썩인 예수 믿는 한 딸과
평생을 효도한 예수 안 믿는 아들들,
엄마가 암에 걸려도 이방 땅에서 눈물만 흘리고
불효녀 중의 불효녀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셔서
구원이 전부라
오늘 최고의 효녀가 되게 하셨다.
엄마, 하나님이 엄마 살려 주셨지?
하고 물으면 그럼 살려 주시다 마다 하신다.
오히려 딸이 신앙 생활 잘하나 걱정이 되어
너 일하니까 피곤해서 주일에만 교회가니?
넌지시 물어 보시며 나를 기쁘게 하신다.
엄마 사랑합니다. 얼음 여사님.
얼음을 녹이시고 엄마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추석에
우리 가정의 대대의 사단을 상하게 하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식사를 마치자 마자 천안으로 돌아가는 친정 엄마가 안스러워
계획에 없이 따라 탄 승합 차 안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세 남 동생에게 많은 사건을 주신 것을 알았다.
형님 어떻해요 이 사람이 집에서 말을 통 안 해요.
못 살겠어요.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우리들 교회 목장예배를 방불케 하는
오픈과 처방은 끝이 없었다.
작년 추석에 나를 힘들게 한 사촌 올케 딸은 나사렛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입학하여
며칠전 김형민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신 부흥회 집회에 참석케 하심도 알게 되었다.
복있을진저 ! 나를 핍박하는 골육들이여!
구원이 확실히 임할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