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전략/롬15장바울이 로마입성을 눈앞에 두고 당장 수행해야 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이방인들로 부터 거둔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마음에는 염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의 일부는 바울을 유대교의 배신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바울의 자유주의 복음(믿음으로만~)에 문제가 있다며
그의 사역보고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간절함으로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저는 사역보고를 읽다가 바울은 나름대로 치밀한 연보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의 속셈은 이방인이 준 헌금을 유대인에게 전달하므로
예루살렘교회에 진 영적인 빚을 갚고
이방인에게는 유대인들의 반목이 해소되었음을 알리기 위함이 아닐까요?
해마다 명절이 되면 누가 몇 억을 고아원에 냈다느니
아무개 할머니가 평생 안 먹고 안 써서 모은 돈 얼마를 장학금으로 기탁했다고 하는
뉴스를 접하고 누구나 아, 그래도 아직은 이 사회가 살만하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제는 어떤 특정인만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제시된 구제는 모든 성도가 한 가족으로서 재물을 나누고
통용하는 정신이 핵심이기 때문에 구제비는 꼭 고아원이나 양로원에만 보낼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 내에 성도들을 돕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 지경이 넓혀져서 불신자나 사회 전반으로 확대될 수는 있지만
이 경우는 상대적인 것이고,
교회안의 고아와 과부를 돕는 것이 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이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를 위하여 존재한다거나 구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매일 경험하는 것처럼 사회는 하나님을 믿지도 않을 뿐더러
죄를 조장하고 있고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와 어느 정도 격리 되어야 하고 피해와 손실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를 도울 것인가 가 명백해 지지 않았나요?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이 땅의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저들의 수고와 성실을 위로해 주옵소서.
또한 교회 안에 있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섬길 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하옵소서.
특별히 고학생과 셋집에서 고생하는 성도, 은퇴한 노인 분들
그리고 병마와 싸우는 환우들을 돕는 일에 힘쓰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2006.10.4/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