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찢어지는 처절한 아픔~~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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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9.30
가슴이 찢어지는 처절한 아픔~~<롬>14;1~12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내 가슴 속의 찢어지는 처절한 아픔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딸이 평생을 않고 살아야 할 그 고통, 상처를 생각할 때마다
내 가슴은 심한 통증으로 아리고 쓰라립니다.
다시 말하여 내 딸이 당하는 #65378;아픔#65379;#65378;슬픔#65379;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공동체의 집사님들이
#65378;결손 가정#65379;의 상처가 연유가 되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고통 속에 살아오게 되셨다는 간증을 들을 때마다
내 아이가 그렇게 간증하신 그 분들처럼 #65378;결손 가정의 상처#65379;를 않고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을
애통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찢어지는 처절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나의 #65378;이혼#65379;의 상처를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가 아이 자신의 인생길에서 결손가정의 상처가 평생의 올무가 되어
아이를 괴롭히며 따라다닐 것을 생각하니 정말이지 너무나 가슴이 메어집니다.
아빠 집, 엄마 집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아이의 외롭고 슬픈 고통이
오늘 내 마음에 전이되어 너무나도 처절하게 아픕니다.
어른들을 경계하는 아이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아주 가끔은 마음을 열어 경계의 끈을 풀어 보이기도 합니다마는
그 마음이 자유롭지 못함을 느낄 때마다 나는 속으로 통곡합니다.
졸지에 #65378;아빠의 빈자리#65379;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었을 아이입니다.
몇 년간을 늦은 시간까지 아이의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빈 집을 홀로 지키면서
아이가 느꼈을 두려움, 공포감, 외로움, 게다가 아빠의 빈자리에서 느끼는 상실감...
사랑이 고파서 느끼는 공복감, 허전함 등을
말 할 사람이 없어서 너무나 심심했다는 아이의 말은 절규였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시절을
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부여 않은 채 그 상처를 깊게깊게 키우면서
그렇게 홀로 그립고 외로운 날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늘 혼자 있고 늘 혼자 다녀야 하는 아이의 외로운 슬픔을...
보고 싶어도 소식 없는 아빠의 빈자리의 아픔이
어른들을 향해 문을 닫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했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아이로 마음의 병을 앓게 만들었음을 고백합니다.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때 쓰고 싶을 때 때 쓰지 않는
좋게 말해서 지각이 일찍 들어버리고 조숙해진 아이...
끝없이 아빠와 놀고 싶고 말이 하고 싶은 아이
그러나 시간이 되면 제가 있는 곳으로 홀로 돌아가야만 하는 아이...
#65378;딸아이가 초5학년입니다..
제발 어린 자녀를 가지신 분들 아예 #65378;이혼#65379;일랑 꿈도 꾸지 마세요.#65379;
#65378;혹시나 지금 #65378;이혼#65379;을 결심하신 분들 중에 자녀를 두고 있는 분들은
자신들의 결단이 그 자녀들에게 어떠한 아픔의 결과를 낳는지를...아시고#65379;
이 아이의 상처는 세상의 어떤 무엇으로도 치유가 안 될 것입니다.
오직 이 아이의 상처 치유는 주님이 만져주실 때만 가능함을 압니다.
말씀만이 대안이요 QT만이 치유가 가능한 치료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교회 안에 있는 것이 희망입니다.
좀 더 빨리 자라서 주위의 방해 없이 스스로 교회에 오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겠고 그 시간의 주인이 예수님이시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나의 죄를 봅니다.
그래서 다시금 오늘 #65378;이혼#65379;의 아픔을 반추해 보고자 합니다.
이혼 당한 나의 사유는
내가 바람을 피우다가 그 현장을 발각당한 것도 아니고
학원이 망해서 많은 빚을 지게 된 것이 주된 원인이 됨도 아니고
이제 나이 들어 경제력으로 무능력해 진 것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능력은 있습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요 능력이라서 그렇지^^
신8;17절에 재물 쌓을 권을 네게도 주었다고 하셨거든요...
문제는 #65378;나#65379;에게 있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도 부부간의 불화는 있었고
예수 믿은 후에도 부부간의 불화는 있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를 믿고도 말씀을 묵상하고 새벽 기도를 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는 #65378;지겨움#65379;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내의 믿음 연약한 것을 비판하였고
아내의 의심하는 바를 정죄했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완악함과 하늘을 찌르는 교만함이
이제는 조금 알고 있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먹지 않는다고 업신여겼으며 먹으면 함부로 먹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내가 소경이요 귀머거리이면서
유치부 봉사를 한다면서도 성경을 읽지 않는 그녀를 탓하며 업신여겼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려 한다고...
평생을 가지고 살아온 열등감이 아내에게 까지도 그 영향이 주어져
아내를 이겨보려는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었고
악을 쓰며 다투던 그 모습, 그 입술로
먹어도, 먹지 않는 자도, 살아도, 죽어도, 다 #65378;주#65379;를 위한 것이라고 외치며
#65378;사랑#65379;없는 심장과 입술로 그렇게 떠들고 다녔으니
그가 보는 내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러웠겠습니까?
아내에게 주지 못하는 #65378;예수님의 사랑#65379;을
청소년들에게 주겠다고 외치며 돌아다녔으니 얼마나 야속하고 미웠겠습니까?
한마디로 예수 믿고도 변하지 않는 나를 보고는 #65378;지겨움의 극치#65379;를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그렇게도 말리는 학원을 주님의 뜻이라고 아전인수로 고집하며 만들었고
결국은 보기 좋게 망해버렸으니 #65378;내 쫓아 버리기로 작정#65379;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랬습니다. 나는 이렇게 이혼을 당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렇습니다. 그 말이 정답이요 내 삶의 결론입니다.
각 가정에 청소년들이 자라고 있는 부부는 #65378;이혼#65379;을 하지 마세요.
이혼 당사자의 아픔은 세월이 지나면 세월과 함께 전설이 될 수도 있지만
자녀들은 평생 짊어지고 갈 #65378;멍에#65379;로 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나의 완악하고 교만한 모습으로
아들,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내 모습을 보았기에
앞으로의 인생에 타산지석으로 삼기위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