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인것에 대한 자유의 한계 ( 흡연,음주,카드...등 )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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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9.30
롬 14 : 1 ~ 12
롬 14 : 1 믿음이 연약한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바를 비판하지 말라
교회내에서 믿음이 연약한자와 강한자들 사이에서 서로 판단하는 일이 생긴것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두되는 가장 큰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신앙문제의
견해 차이로 인해 서로 판단하는 일과 그로인한 내적 분열 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 바울이 세운 대부분의 교회도 분열이 생겼습니다.
즉 고린도교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느냐 못먹느냐로 논란이 있었고 지도자들로 인해
분열을 일으켰으며 서로 고소까지 하였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서로 다투었고
빌립보교회에서도 두 여인이 서로 반목한 결과 교회가 분열 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범한것 입니다. 그러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들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언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의 행위에서 < 무엇이 잘못인가 ? > 하는 논쟁이 기독교 출발 이래로 계속
되어 왔으며 이것을 아디아포라 ( adiaphora ) 혹은 아디아포라 논쟁이라고 했습니다.
아디아포라/ 는 대수롭지 않은것들/ 이라는 뜻 입니다.
기독교 윤리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명하시지도 금하시지도 않는 행동들을 의미 합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이 자신의 판단과 신앙양심의 자유에 맡겨야 할 문제를 말하는것 입니다.
예수님의 아디아포라 논쟁은 거의가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논쟁 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것과 악을 행하는것, 생명을 구하는것과 죽이는것, 어느것이 옳으냐 ?
라고 말씀 하시므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바리새인과의 논쟁에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개별적인 말 한마디와 가장 하찮은 행동들도
마음에 가득한것을 표현하는 고도의 윤리적 의미를 갖는것임을 일깨우면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예배의 장소 보다는 예배의 본질에 주목할것을 가르치셨고 구제의
원리, 기도의 원리, 헌금의 원리까지 가르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에 임하는 사람의 마음의 자세가 진실로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가를 중히
여기셨다는것 입니다.
바울은 주의 만찬을 제외하고는 기독교 예배에 있어서 어떠한 형식을 고착화 시키지 않고
다만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충고 했습니다.
또한 바울의 견해는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우며 유대인의 음식과 음료를
관장하는 의무로부터 자유로우며 율법적인 노예의 신세로부터도 자유롭지만
그 자유는 책임감에 의하여 조정되고 사람에 의하여 제약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기독교적인 자유의 통제 수단이고 조건인 셈 입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적인 오락을 적절하게 즐길수 있는 권리를 인정 했습니다.
반면 칼빈은 모든 세속적 오락을 금기 시켰으며 제네바 훈련 규칙을 만들어서 그리스도
인들을 훈련 시켰습니다.
이러한 유명한 논쟁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서도 수많은 아디아포라 논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흡연문제도 어떤 교회나 교단에서는 죄로 간주 되는데 반해 다른곳에서는 사소한 문제로
간주 됩니다. 또한 음주문제, 카드놀이, 어떤 음식을 먹는것, 춤을 추는것, 심지어는
TV 시청이나, 영화관람까지도 죄가 되느냐 아니냐로 논쟁이 끊임이 없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특정한 행위가 그리스도인 자신에게 허용 되는가의 결정 기준은 다음
세가지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1. 성경은 나에게 이 행위를 금하는가 ? 금하면 죄입니다.
2. 비록 그것이 본질적으로 죄가 아니라 할찌라도 내가 행함으로 시험에 빠지거나 혹 죄를
지을수도 있는가 ? 죄의 유혹에 처할 경우는 피할 의무가 있습니다.
술 한잔으로 인해 죄를 지은 과거의 경험이 있다면 한잔도 NO
3. 내가 이 행위를 하는것이 약한 형제를 자극하여 그를 실족하게 하는가 ?
성경에서 금한 범죄 행위와 그 안에 죄는 없으나 피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질상 아디아포라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본질적으로 사물은 죄가 아니라는것 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각자가 성경을 아는것이 요구 됩니다.
그리고 또한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의 양심을 비판하는 일을 사람이나 교회에 맡겨서도
안되다는것 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루터같이 / 나는 성경의 내용에 메였고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의
포로가 되었다고 선언할수 있어야 할것 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본성으로 결국 자기 중심이 되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인들은 타락한 자연적 본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난
사람들로서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극심한 종교의 타락과 교회의 부패상을 향해 항거하고 일어난 종교개혁자들의 가장
중요한 슬로건이 <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였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살지도 죽지도 아니하고 오직 주를 위하여 살고 주를 위하여 죽었습니다.
그렇게 따라하기가 어렵지만 성도가 세상과 하나님을 한꺼번에 섬길수는 없습니다.
주께서 먼저 나를 위해 죽어 주셨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것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내가 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