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입을 열다
작성자명 [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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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9.26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어제 저녁 식탁에서 남편이 입을 엽니다.
- 모레 할머니 오신단다!!
- 와, 정말요?
둘째와 막내는 기뻐하는 데 저는 얼굴이 굳어집니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입니다.
전 속으로 “또 우리집이야?” 하며 온갖 생각이 빠르게 교차하며 머리가 아파옵니다.
그러고 있는데 저의 변천사를 잘 알고 있는 영적인 아들, 둘째가 한마디합니다.
- 우리 엄마, 또 힘들게 생겼네!
그러잖아도 온갖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 차에 그 말을 던지니
전 못참고 대꾸합니다.
- 그래, 엄마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다..
남편은 “체, 쯔쯔”합니다.
전 생각합니다.
듣고 읽은 말씀이 많아서 머리로는
그래, 남편한테 하나님의 형상을 보일 좋은 기회야
말이 안통하니 삶으로밖에 본을 보일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 줄 알아 하는데 마음으로는 쉽게 용납이 잘 안됩니다.
먼저, ‘아이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는데 어머님이 오시면 아이들 패턴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또 거실에서 TV를 크게 틀어놓고 연속극을 보시니 아이들 시험공부에 방해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고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평소에 정리하고 산다고는 하지만 구석 구석 정리는 못하고 사는데
먼저 행주부터 삶아야 되겠고 베개껍질도 갈아야 되겠고....
청소기만 자주 돌리고 잘 닦지도 못하고 사는데 바닥도 구부리고 잘 닦아야겠고...
빚지지 않는 적용을 하고 사니 돈도 없는데 추석이니 시장도 좀 봐야 되겠고...
아니, 그런데 왜 이리 일찍 오신다는 거야.
오시더라도 아이들 시험이나 끝나고 집안 정리도 좀 한 후 다음 주초에 오셔도 돼잖아?
수요일이면 예배도 가야 하는데 어머님 오시는 날이니 저녁밥이라도 해 놓고 기다려야지
며느리가 되어 가지고 쏘~옥 빠져 나갈 수도 없고...
15일이 어머님 팔순잔치니 그때 맞춰서 우리가 부산에 다 내려가니, 가고 또 갈 수 없어서
이번 추석에는 그냥 쉬겠구나 하고 속으로 좋아했는데...
아니, 어머님은 꼭 직장생활하는 며느리 집에만 오셔야 하나?
직장생활하는 사람에게 휴일의 의미는 얼마나 큰 것인가..
얼마나 귀하고 기다려지는 날인가...
에너지 충전하고 내 시간 내가 요리하며 그동안 못했던 집안일하는 것하고
시댁식구들이 모여서 내 시간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하고는 얼마나 천지차이인데...
아, 아! 죽어져야 되는데
죽어져야 되는데....
남편은 아이들과 얘기하며 기분이 좋습니다.
유별나게 효자인 남편은 싱글벙글합니다.
평소엔 찌뿌둥하고 말도 잘 안하는데 어머님이 오신다니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것입니다. 저는 그 모습도 보기가 싫어집니다.
“마누라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하면서 어머니만 위한다니까... 난 도대체 뭔가..
제가 답을 아는데도 마음으로 쉽게 품어지질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으로 인해 넉넉히 이긴다고 했는데 왜 난 이모양인가!
왜 겨우 간신히 이겨내는가!
넉넉히 이기는 날은 언제일 것인가!
자신에게 절망합니다.
오늘 아침, 남편은 여전히 싱글벙글합니다.
전 참다못해 한마디 던집니다
- 차~암, 기분 좋으시네! 맨날 찌뿌둥하더니...갑자기 기분이 왜 그리 좋으실까아~~
- 하하하, 우리 어머니가 오신다니까 기분이 좋~구만
그동안 말이 필요없어, 벙어리로 섬기며 한알의 밀알이 되고자 죽어졌던 날들을 떠올리며
이 대목에선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음을 느끼며 입을 엽니다.
- 동이 아빠, 상황이 내가 할 수밖에 없으니 결국은 내가 해야 할 것임을 알지만
어머님이 오시고 추석에 시댁식구들이 우리집에서 모인다는게 싫은 거야...
이게 솔직한 내 마음이야.. 쉬고 싶은 마음 뿐이지..
예전에는 내 성품으로 참고, 내가 의롭다고 생각하고 참고 했었지...
그래서 속은 늘 부글거리고 평안함이 없고 스트레스받아 갑상선기능항진증도 왔었고...
그런데 이젠 아니야..
내가 말없이 하니까 겉만 보고,
당신이 예전처럼 성품으로 참고 하는 것으로 생각할 까봐
분명히 말을 해야 되겠어...
날 봐도, 인간은 100% 죄인이란 말이 맞아, 선한 게 하나도 없어..
너무 감당하기 싫은거야,
하지만 결국은 죽어짐으로 할 것인데 이건 내 힘으로 하는게 아니라는 것,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만 분명히 알아줬으면 좋겠어...
하나님이 죽어지라고 하시니까..
근데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더라고
정말 한발자국씩 한발자국씩 되는 거더라고..
하나님이 이젠 내가 감당할만 한지 자꾸 훈련거리를 주시는데...
내 수준을 너무 높이 보시는 것 같아~~
난 수준 높은 것 별로 안좋아하는데...
언젠가는 해야 되겠다는 말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고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아버지,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아버지 뜻을 분별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벙어리가 입을 열어 아버지를 증거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