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리없는 부르심에 ......
작성자명 [황 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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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9.25
오늘 말씀을 보면서 처음에는 쉼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목장보고서를 올리면서 한번더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크신 비밀을 깨닫게 하십니다.
25절: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것이라.
28절;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29절: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저의 지난 과거를 떠오르게 합니다.
너무나 가슴 아팠고 목말랐던 사랑때문에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저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고 뼈져리게 살아가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들에게 저의 고난을 통해서 위로와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믿음좋은 3대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친할머님은 80이 넘으셨지만 권사님으로 천국을 바라보고 계시고
큰고모부는 목사님으로 은퇴하셨고,
둘째고모부는 장로님으로써 자식들까지 믿음이 좋습니다.
세째 고모부는 중국과 주변나라를 선교하시는 분으로 지금은 목사님이
되셔서 그야말로 복음을 전파하고 계십니다.
막내고모 역시 믿음좋은 고모부와 신앙생활을 너무나 잘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할머님의 딸들(고모들)은 우리가 부러워 할 정도로 믿음이좋고 평탄하게
잘 사는데 유독 아버지와 삼촌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삶으로 무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유인즉,남달리 공부를 잘하신 아버지를 너무 육적으로 귀하게 섬겨
이기심많고 자기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좋은 텃밭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젊은 시절 박태선장로에게 빠져 전도관으로
다니시고 불신결혼을 하신 댓가로 이혼을 하시면서
저의 고난은 그야말로 빡세게 시작되었습니다.
내 나이 9살인가 10살되었을때에 두살 터울의 여동생이 셋이나 있었는데
막내를 엄마대신 제가 키우고 돌봐야 했는데 참 서러웠습니다.
나도 어려서 부모에게 한창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어린 내가 막내를 키우는것은
너무나 힘들고 버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한번은 동생이 없어져서 나를 당황하게 한적도 있습니다.
정말 보다못한 아버지가 어린딸 넷을 키우기에는 너무나 힘드셨고
그러기엔 나이가 젊어셨습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잠깐 살때가 있었는데
생전 돈에 인색한 분이 돈을 주면서
친구집에 가서 자고 오라고 합니다.
알고 봤더니 여자분을 데리고 온겁니다.
아무리 어려서 뭘 모른다고는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 합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집에 가서 놀다가
교회 꼭대기 다락방에 가서 친구와 함께
통성기도를 했는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자식보다는 여자가 더 소중했고
자식보다는 자신의 입에 들어갈것만
생각하셨던 사람입니다.
막내를 위해 내가 힘들게 사는것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사는것이
안보였나 봅니다.
결국 막내는 할머님의 손에 자라야 했고 ,방학이 되면 할머님댁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5학년쯤 되었을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 성숙했던 저는 키도 컸습니다.
TV를 보면서 할머님은 어느새 주무시고 캄캄한 밤에 삼촌과 저와 둘이서
TV를 보면서 잠들려고 하는데 어느새 내옆에 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추행을 하기 시작했고 저는 그저 반항도 못한채 할머니가 깰까봐 두려워
숨죽여 떨고만 있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일이 여러번 반복되면서 씻을수 없는 마음에 상처가 자리잡아
이 집안을 원망하고 저주를 해댔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으면 무슨 소용이며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어릴때 미리 알아버렸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고사하고 내가 믿고 기대고 의지할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릴때부터 교회는 다녔지만,그 당시 하나님을 붙잡는다는것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젊은 아버지는 엄마가 떠나신후,첫째 계모를 맞이하고 얼마 안되어 떠나보내고
두번째 계모를 맞이 했습니다.
성격은 소탈하고 좋아보였으나 지나친 믿음을 내세우면서 방언과
신유의 은사를 보인다고 가정예배때마다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밑의 동생이 어릴때부터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던
습관이 생겨서 동생에게 손을 갖다대면서 무어라 알아 들을수 없는 소리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물론 치유는 안되었죠!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단의 방언과 사단이 준 은사였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그후,달라진것은 동생의 마음속에 또 한번의 믿음의 상처와
새엄마에 대한 반감만 생겼습니다.
그리고,이분은 기도원을 간다는 쪽지와 함께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새엄마가 없으니 잠깐의 호사는 끝나고
아버지도 사는 재미가 없었나 봅니다.
중2때 세번째 계모가 집안에 들어오면서
나의 사춘기와 방황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남들은 쉽게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이 너무나 한꺼번에
시작되었고 제가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되는 일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고 자식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만 생각하는 저런 사람이 내 아버지인가?
나는 왜 태어났지 하는 생각에 정말 아버지가 정말 미웠습니다.
중3이 되면서 나의성격은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반항심은 점점 커져서 급기야 가출을 밥먹듯이 하였습니다.
일명 문제아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호기심에 시작한
본드와 흡연은 아무 스스럼없이 하고 아버지의 인색함에 짓눌려
있던 저는 아버지의 돈까지 훔치는 손버릇이 생겨났고,학교에서는
늘 말없는 아이였고 공부는 당연히 관심이 없었고,목적 또한 없었기에
왜 사는지 도대체 뭘 해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 의미없는 생활을 뒤로 한채 저는 집을 떠나
기숙사생활을 하기 위해 지방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일하면서 공부할수 있는곳이었고,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지낸다는생각과 아버지를 피해 혼자 살수 있다는 생각에
지옥을 탈출했다는 생각마저 들면서 나를 붙잡고 있던 사슬에서
풀려난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습니다.
또다른 지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학교에 적응하고 있을때
유난히 내게 잘 대해주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잠을 자면 이상한 행동을 하곤 했습니다.
바로 동성애자였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 친구를 좋아했던 언니가 나를 질투하면서
협박편지를 친구에게 보내고 자기몸을 자해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끔찍하고 두렵고 떨려서 이 곳에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왜 이토록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지
왜 이토록 나를 어둠속으로 몰아가시는지
이때까지만 해도 미련한 저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내 앞에 보이는것은 높은 산 뿐이었고
아무리 달려도 끝이 없는 험난한 산 뿐이었습니다.
그후 1999년 그 유명한 다미선교회에서
종말론을 내세우며 그곳에 빠져서 아버지와
동생들은 너무나 열심히 다녔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그들이 주장하는날에 저는 저도 모르게
짐을꾸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혹시 나만 남겨두고 모두 떠날까봐
나만 지옥에 가는건 아닌가 하고 .....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어이없고 웃기는 행동이었지만
믿음이 없던 저였고 말씀의 기초가 없었기에
분별력 또한 없었습니다.
이 날이후 동생들은 아버지를 점점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고 믿음또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모두 성인이 되었기에 원망만 더 해 갔습니다
내 나이 26세 되었을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친오빠를 소개받고 결혼얘기까지 오가면서
시댁에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집앞에 와서는 너무나 놀라서 쓰러질뻔 했습니다.
무당집이었습니다.한평생 살면서 점 한번 보러 간적 없고
점집 구경한번 못하고 살았는데.....
저는 혼자 갈등해야만 #54720;습니다.
서울의 친엄마집에 와서 같이 지낸지 얼마 안되어서
그동안 정도 없었고 어색하고 서먹서먹하게
지내던 터라 아무리 엄마라도 고민거리를
말할수 없었습니다.
또 한번 스스로 지옥불에 들어갈수밖에
없었고 왠지 모를 사단의 권세에 이끌려
만난지 한달만에 결혼생활은 나의 도피처로
시작되었습니다.
신혼생활 4개월만에 임신이 되고 배가 점점 불러 오면서
나의 근심은 시작되었습니다.
신혼집이라 할수도 없지만 시댁과는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으므로 굿하는 날이면 아침 일찍
시댁에 가서 음식을 만들고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저의 태교는 이렇듯 꽹과리 소리를 듣는것이었습니다.
정말 듣기 싫어 미칠것 같고,제발 이 소리를
안듣는것이 저의 소원이었습니다.
이 지겨운 생활은 아이가 태어나도 끝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친정집의 동생과 함께 교회를 다녀온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무당이라 분명히 교회 간것을 알꺼야 생각하니 두려워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를 불러서 묻습니다.
어디 갔다 왔냐?
,,,,,,,,
어디 갔다 왔냐고?
동생이랑 교회 갔다 왔어요.
말하고 가면 안보내주냐?
모시고 있던 동자신이라나 하는
동상을 보여주면서 10년동안
아무 일 없던것이 갑자기 떨어져서
목이 댕그랑 잘려 나갔습니다.
순간 온 몸이 경직되고 그 무서운 눈빛을
보니 소름이 끼쳤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경고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후
얼마 못가서 3년만에 그리고 한참 예쁜짓을 하고
딸을 돌봐야 할때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돈도 필요없으니 아이만 키우게 해달라고
말했지만 아이만은 안된다고 하더군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결혼할때 준비했던 물건만
가지고 친정으로 나왔습니다.
가끔 아이가 보고 싶으면 만나게 해준다던
약속은 지금까지 한번도 지키지 않았기에
한번도 만난적이 없고 지금까지 소식을
알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때문에 동생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습니다.
첫째 동생은 미국에서 현지 남편(이혼남)을 만나
그 자식을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가정환경과 불안으로 고등학생때
이미 폐경이 되어 아이를 가질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하나님을 원망하고
끝까지 없다고 말하면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기도의 응답인지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고 7년동안 연락한번 안하다가
작년에는 한국에 와서 아버지도 만났습니다.
둘째 동생은 하나님의 성회 라는 곳을 나가면서
믿음생활을 나름대로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자신이 다니는것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한부분만 들추어서 오히려 안식일은
토요일이라고 가르칩니다.
셋째 동생은 그나마 다행으로 교회다니며
신앙생활을 잘하는것 같지만 기복적인 믿음으로
가정보다는 교회가 우선이 되어
헌신과 봉사를 하지만 자기 열심으로
하기에 기쁨과 평강이 없습니다.
연약한 저로서는 동생들의 마음을
돌릴수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 할뿐입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믿음생활할수 있도록 끝까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돌아오기만을 한없이 기다리셨던 하나님!
죽을수밖에 없는 죄인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주님을 온전히 섬길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수치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더러는 완악하게
사용되셨던 아버지와 주위의 강퍅한
자들을 미워할수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정말 남이 원수가 아니라 내 가족이
원수라고 하신 말씀에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하면 할머님의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고 사랑을 입은자라고
말씀하시니 강퍅하고 말로 이해할수 없는
그들을 위해 그저 내가 선택한 일이었기에
하나님은 내버려두셨나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이 죄인을 불쌍히 여시시고
저로 하여금 나의 원수되었던 자들도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자신들의
악한 죄악에서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구원의 애통함으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고
깊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아무도 측량할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을
제가 인정할수 있도록 하시고
우리 집안의 사단의 저주를
끊을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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