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기부인
작성자명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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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9.23
저에게는 BC와 AD의 확실한 구분이 있습니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난 후에 변화된 삶의 구분으로 BC와 AD가 아닌,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나서 구분되어지는 결혼 전과 결혼 후의 BC와 AD입니다. 친구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저는 그 전과 다른, 많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눈에 뜨이는 외모와 직업, 온유하게 보이면서도 야망이 있는, 게다가 믿는 집안의 남편과 결혼하고 나서 저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만난 후의 AD가 아닌, 남편을 만난 후의 AD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며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지난 주, 주일 설교 시간에 “자기 부인”이라는 말씀을 듣고 나서 크게 찔림을 받았습니다. 요즘, 남동생이 올케와 힘든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전화를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내가 AD 속에서 취해 살고 있느라 BC의 시간들은 다 잊고 싶어하는 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 회개가 되었습니다. 나의 AD만 끼고 있을 것이 아니라 BC도 돌아보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저의 BC와 AD의 기준은 남편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목자 모임을 하고 돌아온 남편은 저에게 오픈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부인”에 관련한 나눔을 하며 오픈한 내용을 저에게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 표정이 심상치가 않아서 가슴이 막 요동쳤습니다. 지난 결혼 생활 동안 술집과 안마 시술소에서 여자들과 여러 번 관계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리들 교회에 오고 나서 그것이 너무도 찔려서 고민하다가 “자기 부인” 말씀을 듣고 이제 오픈을 한다고 했습니다. 머리가 띵했습니다. 내 남편이 그럴리가 없는데. 전에 남편이 술마시고 늦게 오거나 할 때, 제가 의심의 눈을 하고 보면 날 왜 이렇게 못 믿냐 하며 오히려 큰 소리를 치던 남편이었습니다. 너무도 반듯하고 게다가 주일마다 교회에도 다니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 동안 우리들 교회에서 양육받았던 것을 떠올리며 ‘이 사건이 왜 나에게 온 것일까’, ‘여기에서 나의 어떤 죄를 봐야할까’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분하고 기가 막혀 있는 가운데 떠올랐던 것이 내가 하나님보다 더 남편을 믿고 의지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들 교회에서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란 말을 듣고 내가 남편을 하나님 자리에 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 성령으로 말이 통하는거지’하며 넘어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주신 사건이구나를 깨달았지만 그래도 남편이 용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저의 죄가 생각났습니다. 남편과 결혼 전에 관계를 가졌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결혼할 사람과 결혼 전에 관계를 갖는 것을 죄라 생각지 않았던 나. 그런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남편이라면 결혼 후에도 사회가 눈감아주는 분위기 속에서 그런 일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내 삶의 결론이란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남편의 성실하게 보이는) 행위에 의지했기에 부딪힐 돌에 부딪힌 것”(9:32)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은 것”(10:3)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 사실을 우리들 교회 오기 전에 알 수 있었는데도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9:22)” 말씀과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말씀 속에서 저를 기다려주시고 저의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셋팅을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10:4)의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이렇게 저의 죄를 보고 남편에 대한 마음이 정리가 되고 나니 그 다음 걱정이 일어났습니다. “가만, 남편이 목자 모임에서 이 오픈을 했다고 하는데 그럼 누구, 누구 아는거지?”
남편의 오픈으로 저의 얘기가 회자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당장 부부목장에 가서 남편이 이 주제로 오픈을 할 것이 걱정이 되고, 수요 예배에 가서 사람들 얼굴 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이것 또한 저의 큰 죄였습니다. 남편으로 인해 쌓아왔던 나의 이미지가 남편으로 인해 무너지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망가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남편을 기준으로 한 BC와 AD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내가 그 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낮아졌다고 하면서 얼마나 오만했었는지를 알게 되니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의 음란의 죄와 남편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고 있었던 죄, 다른 사람 앞에서 나의 실체를 보이기 싫어하며 인정받으려고 했던 죄, 이것들을 깨닫게 하시려고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수고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깨달으면서도 수요 예배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벗어놓고 들어간 신발을 보고는 제 구두 뒷굽으로 꾸욱 눌러버리고 모른 척 들어왔습니다. 아직도 업 다운이 있는 저입니다.
그런 저에게 곽 경숙 집사님과 이 효숙 집사님은 큐티 나눔에 올려서 저의 죄를 오픈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러나 어제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는 말씀과 입으로 시인하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또한 “…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10:1)”란 말씀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으로, 이 오픈이 저의 죄를 끊고 새롭게 됨을 입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게다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으로 위로까지 해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우리들 교회에서 목사님, 목자님들이 말씀해주시는 “원리”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부인”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죄됨과 누추함을 얘기하는 것이고, 이것을 마음으로 부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 시인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오픈합니다.
저의 “자기 부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