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의 신학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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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9.20
롬9:19-29
오늘 말씀은 내가 누구이냐하는 존재론적인 물음을 요청합니다. 나는 그릇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그릇에 불과합니다.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그의 그릇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나는 그로부터 지음받은 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렇습니다. 귀히 쓰일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역할에 따라서 그릇과 그릇간의 그 위상과 중요성이 달라지듯. 어떤 그릇으로 쓰임받든지 쓰임받는 그자체로 감사해야합니다. 내가 항상 대단한 그릇으로 쓰임받고 싶어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진노의 그릇일 따름입니다. 자신은 진정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인정고백하지 않고서는 내가 토기장이가 될 뿐입니다. 나는 토기장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다는 이 한 사실을 잊어버릴 때 내가 토기장이가 되어 내 마음대로 내뜻대로 살 따름입니다. 이것은 진노의 그릇이 될 뿐입니다. 나는 그릇이요 우리 하나님은 토기장이 임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입니다. 그의 뜻에 절대순종일 따름입니다. 다른 선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의 순종의 도구일뿐입니다. 그가 마음대로 쓰도록 되어져야 할 도구일 따름임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쓰시던지 하나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뿐입니다. 내뜻이란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내뜻대로 할 때 긍휼의 그릇인 내가 진노의 그릇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에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반면에 구원받은 자는 단지 남은 자들일 뿐이랍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이신 토기장의 뜻을 좆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을 뿐입니다. 문제는 그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과연 삼가 마음의 옷깃을 여밀뿐입니다.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뜻을 제쳐놓고 행여 내뜻대로 내주장대로 살고 있지 않는지 오늘 아침은 더욱 더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볼뿐입니다. 그리고 내가 전에 어떤 존재이었지 헤아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