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고통하는 사도바울을 보면서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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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9.19
롬9:1-18
9장에 들어와서도 바울은 그치지 않는 내적고통이 있음을 말합니다. 과연 예수의 종되는 것, 그의 것이 되어 그를 섬기는 것이란 편안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것을 또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자기동족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 너무나 많은 민족이기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민족주의자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말씀들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합니다.
이스라엘중에서도 하나님이 택한 자들만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다닌다고 내가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고 내가 이스라엘이라 생각하면 큰 착각인 것입니다.
내가 택함받았다 하고 안심하게 되면 도리어 위험합니다. 왜 위험하는냐하면 이렇게 안심하는 가운데서 자기 의가 우리안에, 율법이 우리안에 자리잡을 가능성이 많기때문입니다.
나는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데, 나는 전도를 열심히 하는데, 나는 십일조와 선교헌금을 잘 내고 있는데 등등 이런 생각들을 하는 가운데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의가 침투해 옵니다.
또 잘못 된 교회지도자들이 이런 것들을 부추깁니다. 당신 십일조 냅니까? 무슨 십일조가 신앙의 절대기준처럼말입니다.
이런 식의 논리를 펴면 자기도 모르게 나는 그래도 십일조를 내는 교인이다하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이런 신앙은 모두다 안일한 신앙일뿐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정 내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고통을 직면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고통을 싫어합니다.
대접받는 일을 하려하지 누가 알아주지 않는 일은 꺼려합니다. 썽꾜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잘 드러나고, 잘 보이는 일에 치중하려합니다. 정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일은 찬밥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려하지 자기기 싫어하는 일은 아예 거절합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자기주장은 잘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때로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고통이구나 하는 사실로 위로받습니다.
과거에는 민가민가 했는데 이제는 복음은 우리 믿는 이로 하여금 탄식하고 고통하게 하는 것이구나입니다.
그러나 저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고통을 꺼려하는 존재이기에 고통도 내능력으로 내의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의 까닭없이 베푸시는 긍휼을 생각하면서, 왜 나같이 쓸모없는 자를 택해주셨을까 하고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만이 고통이 고통으로 인식되지 않는가 봅니다.
오, 나를/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죽으신 그 예수를 생각하면서 나도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래서 예수를 따라가는 예수의 종임을 인지/인정/고백하면서, 오직 주의 긍휼이 아니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주님의 절대주권을 인식할 따름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