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선택
작성자명 [김강길]
댓글 0
날짜 2006.09.18
제목 : 인정과 선택
성경 : 롬9:1-18
나는 선택받는 것을 싫어한다.
누군가에 의해서 내가 평가되고, 체크되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인정받기를 원하고, 내가 선택하길 원한다.
오늘 말씀은 인정과 선택에 대한 선을 분명히 해 준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이다.
수 많은 민족 중에, 하나님의 샘플로 선택받는 민족이다.
그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민족적 우월성이 대단하다.
믿음의 계보를 잇고 있는 민족이고, 예수님을 탄생시킨 민족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에게 약속 이란 변수가 생겼다.
그 동안은 모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육신의 씨가 영적인 씨가 될 줄 알았는데, 그 사이에 약속의 자녀 라는 단서가 붙었다.
이제 그들은 육신의 계보는 잇을지언정, 약속의 계보를 잇는 민족은 되지 못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가 혈통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약속의 말씀으로 이루어짐을 말하고 있다.
약속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주권자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다.
선택의 조건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자가 선택된 자가 되는 것이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는 것도 장자의 혈통보다는 약속된 야곱을 원한다는 뜻이다.
긍휼히 여길 자는 긍휼히 여기고, 강팍케 할 자는 강팍케 하시는 것도 약속된 말씀에 근거한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딜레마 와 에서의 딜레마 가 있다.
마땅히 받아야 할 특권을 상실한 자의 아픔이 있다.
인정받지 못하고, 선택받지 못한 자의 슬픔이 여기에 있다.
마땅히, 당연히,...
이런 말들 속에는 권리가 있다.
내 것이라는 소유욕이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숨어있다.
권리는 내 중심적인 단어이고, 선택은 하나님 중심적인 단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것을 특권과 권리라고 생각했을 때에, 그들의 마음은 강팍해 졌다.
은혜보다는 권리와 특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눈이 멀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알아 보지도 못했다.
육신의 선택이 영적인 선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은 것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왕인데, 자신이 결정하지도 않은 것을 모세가 뺏앗아 가려고 하는데에 화가 난 것이다.
힘이 있는 자는 힘을 쓴다. 뜻대로 안되면 강팍한 마음만 생긴다.
긍휼이 필요하지만, 힘이 있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에 고집에 고집을 부린다.
내가 선택받는 것을 싫어하고,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특권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저버린 것도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이다.
외적인 장자의 명분만을 생각하고, 내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도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심을 은혜로 생각하고,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권이 힘이 될 때에, 내가 나오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선택받기 보다는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힘보다는 내 힘으로 하고자 한다. 강팍함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은혜로 생각할 때에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내게 어떤 자리가 주어지든지
내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된 은혜로 받아들일 때에
내 권리와 특권의 힘있는 자리가 아니라, 섬김의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인정받기보다는 선택되기를 갈망합니다.
내 힘으로 인정받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늘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기억할 때에,
힘 있는 자리와 특권이 있을 지라도, 그 힘과 특권은 섬김의 지렛대가 될 줄을 믿습니다.
늘 긍휼의 자리에 나가고, 강팍한 자리에 나가지 않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