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작성자명 [신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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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9.16
장기시신을 신청해야지 미루다가 우연히 신문을 보니 시신 보관 냉동고가 가득 차서
이제 더 이상 기증을 받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선한 일도 때가 있다고
로마서가 끝나기 전에 오픈을 재촉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음부의 권세가 남김없이 뚫고 나가고 복있는 인생이 되어
이 땅의 동성애자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고
남은 생애 전도를 더 잘 하기 위해 하나님께 제물로 나의 간증을 드립니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 간증,
우리들 교회를 오지 않았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듯 싶었든 부끄러운 간증
그런데 신앙배경이 전무한 내가 선교사가 된 가장 결정적 동기가 된 절대적 고난이기에
주님 나라를 위해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합니다.
나는 아침 저녁으로 부모님께 문안 큰 절을 하고, 뜻도 모르는 순 한문의 유교경전을
날마다 줄줄 외워야 하는 금강대도라는 종교를 가지 아버지의 딸로 자랐습니다.
열 살 가량 차이가 나는 언니는 마침 만물상을 하던 아버지 가게가 불이 나서
고등학교를 휴학 중에 연애를 하다 가출을 하여 4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소식이 없으니
언니도 아들만을 선호하는 유교배경의 피해자인 듯 싶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반에서 1등을 했다고 선생님이 고아원에 시루떡 한 말을 턱을 내라고 하셔서
엄마와 떡을 이고 고아원을 방문한 것이
내가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철조망과 세퍼드 개가 있는 고아원은 마치 교도소를 방불케 했고,
그 날 이후로 마음 속에 그 아이들은 왜 그렇게 태어났고 살아야 할까?
그 질문이 나를 괴롭히고 떠나질 않고,
부모의 잘못이라고 단순하게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저주 앞에
외면하고 발을 뻗고 잠자고 밥을 먹기가 힘 들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유교적인 아버지께서는 내가 아무리 상장을 타와도 한 번도 기뻐해 주시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계집애가 무슨 공부냐고 등록금을 주실 때도 던져 주시고
핸디볼 선수가 되고 싶어 새벽 5시 캄캄한 시간에 혼자 학교 운동장에 가서 드리볼 연습을 하면
늘 야단 맞기가 일쑤였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누구보다도 야심 만만한 나는 아무런 큰 상을 받지 못해
집에 와서 엉엉 울면서 그 동안 받았던 상장들을 모두 찢으며
나의 미래의 꿈도 함께 찢었습니다.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가까운 친구들도 다 서울에 갔는데
시골 중학교를 혼자 다니는 것이 정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다시금 고아원 기억이 되 살아나고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하면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을까를 날마다 고민을 하며
교도소에 1년 쯤 들어가 있으면 알게 될까?
어떻게 교도소에 가지? 돈을 훔칠까?
병원에 가서 1년쯤 누워 집중해서 생각하면 알게 될까?
아프지도 않는데 어떻게 병원에 가지? 자동차에 뛰어 들까?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
이 것을 깨닫지 못하면 나는 동물처럼 살다가 인생을 마칠 것 같아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학교에 입학하여 거의 반장으로 뽑힐 줄 알았는데 (장점은 리더쉽 하나)
갑자기 선생님이 교무실을 다녀 오시더니
학교에서 성적 순으로 반장을 뽑기로 했다고 후보로 나오지도 않은 샌님을 임명해 버렸습니다.
화가 나서 더 이상 학교도 다니기 싫고 담임을 미워하기 시작한 것이
내가 사단의 올무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담임선생은 서울이 집이고 무용을 가르치며 절세미인으로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고
화려한 옷과 화장, 애초에 교사로서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이래 저래 싫은 담임,
나는 담임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데 다른 아이들은
어지간히도 좋아했고1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되었는데
사랑하는 현아!
3일이 멀다 하고 서울에서 담임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그리고 개학
편지는 계속되었고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담임이 자기 자취집에 놀러 가자고 끌었고,
함께가는 친구는 좋아 펄펄 뛰었습니다.
화려한 방안, 장사를 하는 부모님, 완고하신 분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분위기
차츰 놀러 가는 횟수가 빈번해지는 어느 날,
집에 가려고 하자 조금 더 놀다 가라고 붙잡고,
내가 부모님께 전화해 줄테니 자고 가라고 합니다.
담임은 우리 아버지께 공손히 여기서 재우고 내일 학교 잘 데리고 가겠다고 했지만
그 날 밤 나는 여자 담임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관계는 계속되고 공부를 집중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인지 나는 장티푸스에 걸려 쇠약해 질대로 쇠약해
좋아하는 운동의 꿈도 깨어지고,시험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서울 이류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그 때 내가 어떻게 서울에 올 마음을 먹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나 끝내 공부를 계속 할 수가 없어 자퇴를 하고 가출, 자살기도
끝없는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유를 모르는 부모님은 언니의 가출과 또 나의 방황에 병까지 생기셨습니다.
그 선생은 또 다른 애인이 생겨 나는 보기 좋게 배신을 당하고,
전에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반장만 골라 성폭행을 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싶어 책을 미친 듯이 심취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신자의 우리 가정에서 성경을 보지 못했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도스토엡스키의 까라마조프 형제들, 파스칼의 팡세란
사실이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벼랑 끝에도 있었고,
책들을 통해서 나에게 구원의 메세지를 전하고 계셨습니다.
극심한 신경쇠약으로 심장에 이상이 생기고 숨을 쉴 수가 없게 되면서
나는 살기 위해 자기 최면을 시작하고 많은 기억력을 상실했고,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잊어야 나는 목숨을 부지하는 인생으로 전락했습니다.
유일한 나의 안식, 친구인 책도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고,
방황도 신물이 나고 너무나 무력해서 마지못해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고, 미군부대에서 공부를 하다
영어공부가 힘들어 도움을 받으려고 친구 소개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몇 번 아무 생각없이 만났는데 청혼을 받고,
그 동안 남자를 만나면 결혼하자고 할까 봐 무서워 도망하던 나였지만
이 사람은 도망 갈 수가 없었습니다.
병든 사람은 병든 사람을 만난다고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 사회와 사람과 격리 된 사람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보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 결혼이
인생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8남매의 장남, 산더미같은 빚, 홀 어머니,
그리고 하루도 술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정치 중독자 35세 남편.
시집을 오니 집에 불상이 두개나 있었고,
온갖 종교를 설렵한 시 어머님,
하나님은 이 분을 나에게 붙이셨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살기 위하여 나는 일찌감치 하나님을 만나야 했고,
하나님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뜨겁게 만나 주셨습니다.
일찌기 존재에 대한 허무함으로 몸부림쳤던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만을 아는 그 자체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감격이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아계셔서......
늘 이렇게 기도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세상은 더 이상 혼돈과 공허와 어둠이 아니요,
공의와 정의가 있고,
모든 고통과 슬픔도 의미가 있고 환란에도 소망이 있으니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돌아 가셨다니!
나는 그 분을 만나자 마자 내 목숨을 천 개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건 나의 간절한 기도로
시어머님이 극적으로 회심하시고 변화하시자
시누이 둘이 귀신에 들렸지만 이번에는 시어머님의 믿음의 기도로
모두 깨끗함을 받고 두 시누이 모두 하나님께 헌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독 남편만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운동권 남편의 병이 그렇게 깊은 줄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수없이 보고도 도무지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남편을
서서히 포기하고 원망하고 말씀으로 판단하고
아이들의 눈에는 살얼음판 전쟁의 소용돌이였습니다.
남편과 말씀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나는 더욱 일 중독이 되고
아이들까지 하나님께 드린다고 율법적으로 대하고 무관심하자
아들은 게임 중독이 되고, 딸은 우울증으로 공부를 중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로마서 1장의 21가지 죄악 중에 가장 위에 성범죄가 있고
그 중에 두 절이나 언급하신 동성애
그 동성애로 인해 사망 길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
예수님의 죽음으로 구원하실 수 밖에 없는 나의 100% 죄,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고 나의 죄값을 대신 갚아 주시고
상한 갈대 나의 남편을 살리라고 나를 먼저 살려 주셨는데
나의 기념비로 교만하여 보석 남편을 원망하고
내 죄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최선만을 다한 내 인생의 결론으로
자녀들을 병들게 했습니다.
병적인 사랑 동성애
한 남자를 살리겠다는 헌신적인 결혼
본성적인 자녀 사랑
육신의 사랑에는 구원이 없었습니다.
지고해 보여도 진정한 자유와 평강과 낳고 낳는 생명이 없었습니다.
나의 100% 죄를 보는 것이 십자가 짐 같았지만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새로운 안식을 누리고
언어가 진실해지고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이끌리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믿음만이 영혼이 소생됨을 확신하게 됩니다.
십자가로 나를 수술하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로 따를 수 없고,
나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주님을 믿는 것
그것은
말씀을 순종하여 죽는 적용을 하는 것 임을 깨닫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
내 죄를 보지않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말씀에 순종하여 육신에 죽고자 적용하는 자는 살 것이라는 말씀으로
감히 깨닫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좇게 하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도록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인생이 축복된 인생이라고
살리는 말씀을 날마다 이슬비처럼 들려 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 드리며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복있는 우리들 교회를 통하여,
나의 죄를 더욱 깊이 보며 팔 복을 누리게 하시고
복있는 인생으로 축복하여 주시니
모든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