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에서 아들로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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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9.16
롬8:8-30
제가 전에는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우리를 위해 간구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 묵상을 하면서 그것이 와 닿기 시작하여 참으로 놀랐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에 왜 내가 이 사실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는가 하며 생각해봤더니 다름 아니라 내 자신이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탄식하지 않았기때문입니다.
신음하고 탄식한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행위의 적극적인 자세인 것 같습니다. 예컨데 나는 죽었다. 나는 무이다. 나는 무덤이다. 나는 이미 예수와 십자가에 죽은 자가 아닌가하면서 자신을 부정하는 태도는 수동적인 자기 부인입니다.
그러나 고통속에서 신음하며 자기를 부정하는 것은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기부인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바울사도가 예수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려는 고난에 대한 능동적인 자세을 취했지 않습니까. 괴롭고 힘들지만 그 고통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입니다.
이런 자세는 묵상할 때에 하나님앞에서 고뇌하는 태도입니다. 예컨데 나와 맞지 않는 자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참고 견디면서 때로는 탄식과 신음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이런 내적인 고통을 감내하는 자세입니다.
이런 고뇌를 중단없이 인내하며 수용할 때 이윽고 우리는 그분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 합니다(종에서 아들로).
피조물인 우리가 먼저 해산하는 고통을 가져야 한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해산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답니다.
우리는 예수의 것(1:6), 예수의 종으로서 자기부정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해야하는지 이런 탄식어린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는 이에게 과연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전에는 못깨달았고 부끄럽게도 오늘에 와서야 깨닫게 되니 다시 한번 더 의아해했습니다.
얼마 전 이곳에 있는 어느 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는 요즘 묵상시간에 무엇을 요청하는 기도는 전혀 나오지 않고 기도 시간에 자기 성찰에 묵상시간이 거의 할애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도 그분의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사실 저도 제 자신을 돌아보고 은혜로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가운데 물론 탄식이 입가에서 튀어오는 가운데서 그런데 이런 상황속에서 성령께서도 말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내가 간구해야 할 모든 다른 기도들을 친히 대신하여 나를 위해 기도할 뿐만아니라 그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러니깐 나를 대신해서 중보할 뿐만아니라 그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해주신다는 사실에 더욱 더 놀라왔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내가 내 자신에 대해 탄식(신음)을 발하며 애통할 줄 아는 것이 어떤 다른 기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가 어떤 것인가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이렇게 놀라와 은혜를 받았지만 한편 제가 얼마나 나를 짓누르는 고통들을 애써 회피하려 했던지 저의 잘못을 다시 되새겨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