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면 보여/롬8:18-30기독교는 믿음 소망 사랑의 종교입니다.
이 셋은 서로 친밀하게 연결이 되는데 오늘은 믿음과 소망의 관계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해 가실 때 죄-율법-육신으로부터
해방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물론 최종 목표는 나를 그리스도의 형상까지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 편 에서는 예수님을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로 보내시어
이미 죽음 문제를 해결하셨고(히1:2:9) 이제 선택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흠도 점도 없이 영광스럽게 해 주실 일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율법으로 하지 않고 성령으로 하시기 때문에
내게는 별로 티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율법이 무섭고 권위적이고 딱딱하다면 성령은 무엇보다 부드러움이 특징이 아닙니까,
이 때문에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내주 하시는 지의 가부가 애매할 때가 생기는데
분명한 것은 믿음이 진짜로 있으면(성령이 내주하시면)
보이지 않는 소망을 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reality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믿음은 소망이 없이는 볼 수 없는 것을 보면,
저마다 믿음과 소망이 있다고들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소망이 확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믿음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형제가 자매를 좋아한다고 가정했을 때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정말로 좋아한다면 그 증거는 분명히 보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방면에 눈치가 빨라서 연애하는 사람들의 불꽃 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추상적인 것이고 성령의 내주가 안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 증거는 반드시 들어나기 마련입니다.
자, 이제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니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이라고,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기에 참음으로 기다릴 뿐이라고,
위로의 성령님, 곤고한 내 마음 가운데 오시옵소서.
주께서 선택한 자들이 예수님의 형상을 닮도록 예정하셨고
이를 위해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로 오셨사오니 속히 육신의 소욕을 접고
의롭고 영광스러운 백성이 되어야 하는데
오 주님,
나 때문에 피조물조차 탄식하고 있는 그 소리가 내 마음 가운데도 들려지게 하옵소서.
2006.9.16/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