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과연 줄서기 그런데 줄을 끝가지 붙들어야
작성자명 [심다니엘]
댓글 0
날짜 2006.09.12
로마서는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자기복음을 소개합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이 개척하지도, 한번도 가보지도 않는 그곳에 이미 복음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 다시 온전한 복음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이미 옛날 교회에서 다는 아니지만 많은 목사님들에게 들은 복음은 내려놓고 다시 바울복음(바울이 연구한 복음)에 귀를 기울어여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복음을 어떻게 소개하고 이 복음을 어떤 논리로 전개해 나가고 있는지 이것을 파악하지 못하면 자칫 우리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영생을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많은 한국교회목사님들이 예수믿으면 구원얻는다고 전합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바울도 로마서에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목사님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가 그 심판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곳에서 결코 한국교회에서(저 자신을 포함해서) 잘 못 전한그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이 글을 씁니다. 바울이 전한 그 복음과 신약에서 예수께서 전하신 그 복음 그리고 구약에서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복음의 내용은 동일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철저히 순종을 말합니다. 복음은 순종을 가르킵니다. 예수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 믿고 예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사는 그러니깐 자기욕심버리지 않고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천국문앞에서 좆겨나갑니다. 자신은 철떡같이 예수믿고 천국가는 줄 알고 있는데 그날에 감짝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은 마태복음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예수께서도 여러번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말씀에 필이 꽂히지 않은 이유는 예수믿고 세상적인 소원을 성취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때문입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봅시다. 예수님은 영생에 대해 질문했던 부자청년에게 네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 그리하면 영생(하늘의 보화)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중심을 아시고 핵심을 찔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자는 슬픈기색을 하며/근심하며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막10:21-23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 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데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1-22).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부자는 거의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부자되려고 애써는 것 다시 한번 더 고민해보아야합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려는 그 동기가 무엇인지 그 동기를 말씀안에서 바로 해결이 안된 상태에서 돈에 집착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돈에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부자는 이미 돈의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자칫 돈의 종이 될 위험이 많습니다.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삭개오도 부자라고 했습니다(눅19:2). 그러나 그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자기재산의 반을 내어놓았고 또 자신이 뉘게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눅19:8).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이 집에 오늘 구원이 임했다고 했습니다(눅19:9). 똑 같은 부자인데 한 사람은 예수보다 물질을 주인으로 섬겼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오 그런데 부자 삭개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복음만큼은 확실하게 바로 증거해야 합니다. 복음은 왜 전합니까?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서두에 바울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로하여금 믿어 <순종>케하기 위함이라고(1:5). 순종의 문제가 선결되어야지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롬1:16)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로마서를 잘 보셔야 합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이미 1장 전반부에 나타나 있습니다.그리고 복음을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것이(종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롬1:6) 이것이 복음의 믿는 이들의 결과입니다. 복음의 열매는 내가 예수의 것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목사를 주의 종으로 그것도 일반성도와 구별해서 주의 사자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사자란 단지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무슨 권세와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교묘하게 목사만 종으로 그것도 종님으로 사자목사님으로 종이 권력화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종의 개념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목사는 종으로 성도를 섬겨야합니다. 그런데 목사종은 하나님에게 종이지 교회의 종이 아니라는 생각이 박혀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는 제도부터 개혁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목사가 되는 목적은 더욱 더 그리스도의 것(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일반성도와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로 예수님에게 순종케하고 예수님의 종이 되게 하려면 자신이 더욱 더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가 아닙니까. 예수의 소유가 되어야합니다. 내 소유가 있습니까? 어떻게 교회에서 세습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한국교회의 수치중의 수치입니다. 교회가 이미 사고 파는 매매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는 혹독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몇십년 동안 목회해왔던 교회이기에 다른 목사에게 팔 뿐만아니라 또한 내것이라 생각하기에 자기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기에 마음대로 합니다. 그런 목사는 더 이상 예수님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내것을 포기해야합니다. 자기몸도 자기소유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도바울도 첫머리에 자기를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롬1:1). 종이 되려면 자기 욕심을 버려야합니다(롬6:12). 아담이 왜 범죄했습니까? 자기 욕심때문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때문이었습니다. 사탄탓도 누구탓도 아니라고...맞습니다. 자기욕심때문에 죄가 들어왔고 그 죄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예수의 종이 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이 복음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입니다. 그것을 쉽게 풀어 말한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께 순종할 때 구원 즉 영생을 얻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영접했다고 구원받는다고 착각하면 지옥불에 던져집니다. 왜냐하면 영접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내속에 모시는 것이기에 내가 사라져야합니다. 왜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나이까? 순종하지 않으면 영생이 없습니다. 천국못갑니다. 옛날에 목사님들에게 잘못 배웠던 것 다시 정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바울의 복음(예수의 복음을 온전히 소화한 복음과/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과 구약에서 끊임없이 말씀하고 있는 바 오직 하나님께 순종의 복음을 이 땅에서 전하다가 죽기로 작정했습니다. 복음을 잘 못 전해 화를 입는 어리석은 종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도 내게 화가 되지만 복음을 잘 못 전하면 더욱 더 화가 임할 것이라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렇게 평소와 다른 톤으로 말씀을 올리는 이유는 잘못 전하는 나도 망하고 듣는 이도 망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의 종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줄 아십니까? 예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팔자를 완전히 바꾸는 일입니다.
오 정말 그러합니다. 만약 우리가 아담을 선택한다면 우리의 운명 즉 우리의 팔자는 죄의 종이 되어 죄가 왕노릇함으로 영원한 사망에 이를 뿐입니다. 구원은 선택의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잘 판단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만약 예수를 선택했다면 아담 줄에서 이탈하여 예수의 줄에 서는 것입니다. 예수의 은혜로 말입니다. 구원과 영생은 줄을 잘 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구원을 받기위해 다른 말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사탄즉 아담의 줄에서 빠져나와 예수의 줄에 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의 줄에 서 있어면서 자꾸 아담의 줄로 왔다갔다합니다. 심지어 예수의 줄에 서 있기 위해 자기이름을 예수께 등록해놓고 생각과 행동은 세상 줄의 즉 아담적인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이제 명백한 것은 예수의 줄에 섰으면 계속해서 예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그 줄의 대열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줄만 꼭 붙잡고 가는 것이 믿음이요 그것이 순종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과 우리의 팔자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선택했으면 이제 예수께 소속이 되어 그분의 지배를 받아야합니다. 그분의 지배를 받으려면 사사로운 자기 욕심을 버려야합니다(6:12).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께/예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못됩니다. 아담 한 사람아래서는 우리가 나의 욕심으로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였으나 이제 예수 한 사람으로 인해 죄에서 해방되는 그래서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영생 즉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한 사람의 순종에 의해서 우리가 의에 이르고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그를 믿기만 하면 이제는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 정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내죄를 깨달을 때마나 내속에 은혜가 넘칩니다. 죄가 더 이상 나를 주관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말에 오해 말아야 하는 것은 은혜아래 있다고 죄를 지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이 말의 뜻을 오해말아야 할 것입니다. 은혜를 더 넘치도록 하기위해 죄를 더 지어도 괜찮겠구나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내심령에 비췰때마다 내죄가 더욱 드러날 뿐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더하는 곳에 내죄가 더 들어나는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칠 것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죄를 더 많이 짓는 것이 아니라 은혜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말씀)앞에 나 자신을 비추일 때마다 내가 의식치 않았던 그런 죄들이 성령으로 인해 부끄럽게 드러날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는 은혜, 내가 죄인이라는 은혜,그 은혜가 더욱 더 내 심령에 비춤임바 되면 될 수록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한 반응이 나타나 죄를 거부하게 됨으로 죄가 나를 주관치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은혜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나오겠지만 우리가 부단히 욕심을 버리고 나는 죽은 몸이다(예수와 함께 연합하여 죽었음으로)라고 선포하고, 내가 죽었으니 내것이 없다 날마다 자기부인을 할 때 내속에 생명의 역사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참으로 은혜입니다. 예수 믿고 내중심에서 예수중심으로 생각을 바꾸니 행동도 바뀝니다.
전에 예수를 믿지 않았을 때는 죄를 죄로 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죄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율법을 스스로 지키겠다고 하니 이런 자가 율법아래 있는 자입니다. 저도 우리모두가 전에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나를 포기하고 오직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며 그의 뜻을 좆아 살 때 내죄가 더욱 더 드러나고 내가 죄인중에 괴수임을 앎으로 이런 죄인을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더욱 더 나를 부인하는 일들이 여러차원에서 여러분야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았으니 이제는 구원을 얻었으니 은혜이다 라는 차원은 일단 줄은 바로 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자기 욕심때문에 그 예수님의 줄에서 이탈하여 자기 욕심을 따라 산다면 다시 옛 아담의 줄로 돌아 가는 것임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구원을 주신 것은 다시는 죄에 종노릇하지 말고 의에게 종노릇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의란 다름아닌 예수님입니다. 왜 예수믿고 교회 열심히 다니는데 자기의로 가득차있고 욕심못버립니까? (6:12)줄기차게 예수의 종이 되어야 한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합니다. 날마다 둘 중 한 곳에 줄을 서야합니다. 죄의 종이 되는 곳에 줄을 서야 하는지 아니면 의에 종쪽에 줄을 서야하는지 구원은 결국 종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복음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집니다. 복음의 목적은 바로 종의 문제 즉 순종의 문제입니다.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날마다 한가지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는 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한국교회성도들이 이것이 잘 안되는 이유는 새벽기도때부터 복을 달라고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던 습관 때문입니다. 우리한국교회가 복음이 제대로 확산되었다면 새벽기도 때에 내 욕심내려놓게 해달라고... 기도의 차원이 달랐을 것입니다.
자기 욕심을 버리면 하나님이 모든 우리가 하는 일에 구원의 능력을 친히 베푸시는데(롬1:16),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데, 그런데 욕심을 버릴 때 오, 우리 주께서 친히 모든 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상으로 채워주시는 그 원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것이 보일리가 있겠습니까? 욕심을 자꾸 버리는 훈련을 하면 마음이 청결해지니까 자연 하나님이 보입니다(마5:8). 사실은 기독교가 욕심을 버려 마음을 깨끗케하는 종교인데 세인들은 불교가 욕심을 버리는 종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교회숫자 자랑하고 교인숫자 자랑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복음의 전단계(AII steps)를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의 첫 단계만 이해함으로서 복음을 천박하게 만들고말았습니다. 참으로 한국기독교가 천박합니다. 이런 천박한 복음을 온나라에 가서 전파하려합니다. 2020년에는 평신도 자비량선교사 2백만을 보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죽이고 자기욕심을 버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온 세계에 흩어져서 싸구려복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먹칠하게 할까 여간 신경이 쓰이질 않습니다. 한국교단은 이제 공명심을 버려야합니다.
이제 다시는 주님께 심판받을 왜곡된 복음을 이 땅에서 전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윗글을 적었습니다. 다시 언급하지만 위의 글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려고 쓴 것이 아닙니다. 제가 옛날 죄의 종노릇하는가운데서 주님의 은혜로 이제 이렇게 그의 크신 은혜로 의의 종이 되어가는 이 감격이 얼마나 큰지요? 주 예수의 것이 된 것이(1:6) 얼마나 자랑스러운인지, 이 세상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주 예수여 나의 주여, 벌레만도 못한 나를 당신의 종삼아 주시는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