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에게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작성자명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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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9.09
롬 5:1~11
요즘 저는 시누이 묵상(?)을 많이 합니다.
어제 4차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 자신에 대한 정죄감도 있고,
시누이를 향한 안쓰러움과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정말 이렇게 시누이를 데려 가시려나...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입니다.
시누이는 암 소식을 들은 후,
3개월 후에 제게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고모부가,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에게 왜 연락을 안하냐고 채근을 해서야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아마 시누이가 연락을 안 한것은,
교회에 나가라는 말을 제일 먼저 들을 것 같아서였을 겁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감정 때문에도 그랬을 겁니다.
시누이는 저희에게도 연락을 안했지만,
그동안 가깝게 지내던 동네 친구나 학교 친구에게 까지도 연락을 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암이 부끄러워 제일 먼저 내린 결정이,
살던 동네를 떠나 멀리 이사를 가는거라고 생각해 이미 이사 날짜까지 잡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암을 알게 된지 3개월이 되었다는 시누이의 얘기를 듣고,
형님 지독하시네요...어떻게 그런 소식을 이제야 말씀하세요...너무하셨어요.
저도 태영아범이 놀고 있어서 전화는 드리지 못했지만...기도는 날마다 드렸는데...너무하셨어요..
하며 원망 섞인 말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입원한 시누이를 위해 기도하며,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제게 말을 안한 것은 제 탓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보자를 통해서인데..
그래서 저도 시누이의 구원을 위해 작은 예수 가 되어,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통로로 쓰임 받아야 하는데,
제가 시누이에게,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에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은근히,
시누이를 나보다 더한 죄인으로 생각합니다.
나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는데,
내가 잘나서 선택 받은 것 같은 유대인의 선민 의식이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의롭기 때문에,
죄인을 위해 죽어 주는 구체적인 적용을 못했습니다.
나는 그의 구원을 위해 통로의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게 했어야 했는데..
저도 그에게 두려운 것이 있었고,
껄끄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소망은 나만의 소망이었을 뿐,
그에게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게끔 만드는 능력있는 소망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앞으로 시누이가,
나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믿음으로 잘 서 있을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부어지게 하는,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누이의 소망이,
이 환난을 통해 하늘의 소망으로 바꾸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