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신비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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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22
욥 34 ; 31 ~ 35 : 16
엘리후는 하나님의 절대의와 주권을 들어 올바른 사람은 고난을 받을때 겸손히 자기를 돌아
보고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을 순종하고 받아들인다고 강변 합니다.
따라서 엘리후는 욥이 고백했던 무죄와 순결함의 주장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한 반역이요 죄인이 취하는 반역적 태도라고 단언하여 마침내 이를 욥의 죄를 반증하는
증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판단에 지혜자의 동의를 첨가하여 욥이 더욱더 시련을 받아야 한다고 선언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죄의 근거를 욥이 시련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악인이며, 하나님을 불의 하다고하는 패역한 죄인이기 때문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남을 정죄하는 엘리후의 태도는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원수까지라도 사랑
하라고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거스르는 강팍하고 잔인한 처사 입니다.
어떤것의 옳고 그른것의 판단은 자신의 좁은 신앙과 알량한 신앙지식으로 할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준을 두고 행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나 목장내에서 잘못을 범한 믿음의 형제가 있을때 여론을 몰아 정죄하기 보다는
사랑과 이해를 기초로 권면하는것이 그리스도의 지체된 성도의 본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일이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것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것 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위험한것 인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일을 다스리고 지배하기에는 너무나 무지한 내가 모든일을 좌지우지 한다면
나자신뿐만 아니라 하나님, 인류 모두가 불행하게 될것 입니다.
33절에서 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는
모든일에 대해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그분을 대신하여
운명을 결정 짓고 세상일을 정하는자가 되려 한다는것은 더할 나위없이 어리석은 일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계획은 잘 세우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신 섭리의 계획에 대해서는 무지 합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실패와 고난의 목적과 계획에 대해서도 전혀 모릅
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00 % 옳으시므로 행하시는 모든일이 온전하시며 나에게 가장 유익하다는
사실을 믿을때, 현재가 고통과 고난중이라고 할찌라도 나는 위안을 얻을수 있는것 입니다.
왜냐하면 고통 조차도 나의 유익을 위하여 마련 되었을것 이기 때문 입니다.
< 선택은 나에게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는 방식에 대하여 불평할것 인가 ?
아니면 먼저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복종할것 인가 ?
인류 역사 이래로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에 대하여 수없이 묻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고난은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이 임하는 까닭이 무엇인가를 아무리 묻고또 물어도 분명한
해답이 얻어지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엘리후는 여기서 구체적인 고난과 고통, 즉 세력있는자들이 학대하고 짓 밟아대는 일을
이기지 못하여 울부짖는자들의 고난과 고통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즉 학대의 고통에서 울부짖고 있는자들은 많아도 그들중 사람으로 하여금 밤중에 노래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찾는자는 하나도 없다는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여러가지 고난과 고통을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극것은 바로 역경 가운데서도 영적 기쁨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토록 만드시려는데
그 섭리의 의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밤중이란 앞뒤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극심한 고난을 가르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고난중에서도 나로하여금 노래하게 만드신다는것 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기이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때에 그 발이 착고에 채인채 하나님을 찬미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비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기이하여서 인간이 경험하는 극치의 고난 속에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라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를 원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고난이나 고통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는 교육을 시키
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난속에 울부짖으면서도 이와같은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이 안나는것 입니다. 이 세상 사람치고 고난과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고통이 쓰리고 아파서 말로 형언할수 없을 정도 이지만 그것들이
우리에게 끼쳐주는 산 교훈은 거의 무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실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 나이다 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며
고난 당하는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는 고백이
고난의 교훈이 어떤것 인지를 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은 우리에게 육적인것은 물론이고 영적인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줍니다.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와 그 지식들을 알려주고 있는것 입니다.
그래서 나의 삶의 태도를 온통 뒤바꿔버리도록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과 고통을 두려워만 해서는 안되고 싫어해서만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중에 더할수 없는 지혜도 주십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이길수 있는 탁월한
하늘의 지혜까지 주십니다. 자기의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 입니다.
심지어는 자기의 고통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통을 사모하게 까지 만드는 지혜가 생기게 되기
때문 입니다. 한마디로 자기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것과 같게 승화 시키면 그것이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와 동일하게 되는것 입니다.
고난과 고통 자체는 쓰라린것이지만 그것들이 깨우쳐주는 정신과 영적 소득은 엄청 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과 고통을 무조건 불평만 하지 말고 신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