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요?
내 속에 숨겨진 죄가 있었습니다.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 때 마다 끄집어내서 묵상하곤 했던 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죄라고 생각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저를 이해하셔야 한다고 주장을 했었습니다. 나 같은 인생을 산 사람치곤 이정도의 자기 감정충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올 4월에 금강산에 갔었습니다. 어떤 단체에서 해외 사역자들을 고국에 불려드려 경치 좋은 곳에서 쉼을 얻도록 해주었습니다.
금강산의 절경이라고 할 수 있는 만물상, 일만 가지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만물상이라고 불리는 산에 올라가서 저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가려진 도심 속에서 하나님을 묵상할 때는 다소 추상적인 하나님만을 만났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으신 자연 앞에서 저는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만드신 자연이죠? 어떻게 이렇게 만드실 수가 있으셨어요? 정말 위대하십니다. 이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란 말이죠?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이죠?”
저는 울면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와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주의 하늘과 그의 베풀어 두신 달 과 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오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 를 불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잡아가든 말든 이 위대한 하나님의 작품 앞에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작게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믿고 살아왔지만, 작은 잎새의 떨림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살아왔지만, 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저는 더욱더 확실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저를 바라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때, 제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죄가 생각이 났습니다. 인간적으로보면 얼마든지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거라면 버려야 한다, 라는 강한 울림이 나를 흔들었습니다.
저는 울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 한다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말아야지요. 비록 세상의 법에는 저촉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라면 내가 버려야지요. 하나님, 버리겠습니다. 다시는 그것을 묵상하지 않겠습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작품인 만물상을 두고 맹세합니다.”
4시간 걸려 올라간 산꼭대기의 장엄한 하나님의 작품 앞에서 나의 고질적인 죄를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저는 하나님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나의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내 생각 속에 가두고,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서 들으며 하나님을 축소시켰었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21절과 22절에 하나님은 사람들의 행위를 늘 살피시고, 사람들의 모든 걸음걸이를 보시고, 그래서 악인인 숨을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고, 캄캄한 데나 그늘진 곳이라고 숨을 수 있겠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내가 만든 허수아비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사역지로 돌아온 이후로 나의 사역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쏟아짐을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