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보낸 첫 수련회
작성자명 [김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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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18
안녕하세요 희찬이 아빠입니다
이번 3일간의 수련회 기간은 저와 희찬이에게 참으로 소중한 추억을 공유한 시간이었습니다.
두 주에 한번쯤 보던 부자가 3일 동안 살을 부대끼며 뒹굴며 그것도 말씀 안에서 지낸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니까요
사실 이번 수련회도 당연히 못가는 것으로 생각 했었습니다.
대입 수시1학기가 진행되는 기간이었기에 논술 팀을 운영하던 제가
빠지기는 힘든 기간이었지만 놀랍게도 백수가 되는 횡재(?)를 만나
수련회를 참석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본질적인 신앙의 문제, 정체성의 문제보다, 급한 문제 먹고 사는 문제에
그리고 하나님 보다 사람(논술 팀장)을 신뢰한 제게 하나님만을 보게 하신 사건이 주어짐은
역시 축복입니다.
가족 단위로 가는 수련회에 홀아비?로서 희찬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이
사실 내키지 않아 희찬이 사촌을 데리고 가려 했을 때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며 힘들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처형이나 누님께 무척 서운 했지만
희찬이와의 좀 더 깊은 교제의 시간을 마련해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배려를 깨달은 것은 출발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에게 그리고 희찬이에게
이런 지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욥 31: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발언하여 가로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
하므로 참고 나의 의견을 감히 진술치 못하였노라
8절 사람의 속에는 심령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
9절 대인이라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요 노인이라고 공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10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1.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였을 때나 혹 젊어서 지혜나 공의를 깨닫는다 할지라도
내 안의 총명의 근원이 성령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분량만큼 성장하기 원합니다.
그렇지 못한 젊은 엘리후를 보며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히려 더 심한 나를 회개 합니다.
19절의 말씀처럼 자기 주장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개봉하게 되면 “뻥”소리를 내고 튀어 나갈 봉한 와인과 같고
새 자루를 터지게 할 만큼 강할 것이라고 표현한 욥기 저자의 표현에 공감을 합니다.
나의 의가 그 만큼 강하니까요
봉한 포도주와 같이 새 가죽 부대라도 터뜨릴 정도로
내 안에 있는 의를 담아두지 못하고 나의 언어로 얘기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안의 의가 아직 많음을 고백 합니다.
내가 얘기하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함으로서 시원하고 싶은 것 나의 의를 드러내고 싶은 것(19절)이기 때문에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내와의 불화의 골이 깊어질 때, 사업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을 때
누군가를 붙잡고 얘기 했었습니다. 심지어 기도 하면서도 불평불만을 했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 보다는 아내가 잘못한 것이 많고 경제 상황이 어떻고,
나는 하느라고 열심히 살았었는데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생겼냐고.
하나님을 떠난 죄악이 충만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거미줄에 잡혀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칠수록 옥죄어 오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임을 우리들 교회에 와서야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는 내 안의 많은 의를,
죄를 볼 수 있게 양육해 주는 우리들 공동체를 사랑 합니다
욥 31:21-22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아첨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자가 속히
나를 취하시리로다
2.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사람의 안색을 살피고, 아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길 원합니다. 나도 희찬이도
나는 사람의 낯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고
단지 하나님을 의뢰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윗것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절히 내 식대로 이용하여 마음의 위안을 삼곤 하였습니다.
나의 이해관계를 생각할 때 전광석화와 같이 계산이 빨라지는 나의 모습을 볼 때
나는 아직도 먼 자임을 고백 합니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희찬이의 팔 배게가 되어 주고 말동무가 되어 주고
간지르고 아들의 엉덩이를 무는? 기쁨을 주신 주님께서는
이제 또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시간을 주십니다.
나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게 하시는,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지만
아직도 죄인이기에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곁에 있지 못해 해주지 못하는 아픔이 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