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라는 말에 혈기를 내 보니....!!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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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18
[내가 언제]라는 말에 혈기를 내 보니...<욥>32;1~22
[내가 언제] 신용을 안 지키더냐고 말하지만 여전히 신용이 없었고
[내가 언제] 신의를 저버린 적이 있느냐고 말하지만 늘 배신하고 있었고
[내가 언제] 거짓말 한 적이 있더냐고 말하지만 늘 거짓말하고 있었고
[내가 언제] 시기, 질투에 분 내어 말하더냐 하지만 늘 시기, 질투 분내고 있었고
[내가 언제] 비교하여 말한 적이 있더냐고 말하지만 늘 비교하고 있었고
[내가 언제] 편애하고 편견으로 판단하더냐고 말하지만 늘 편애 편견의 마음이 있었고
[내가 언제] 선입견으로 사람을 대하더냐 말하지만 늘 선입견을 지닌 채로 대하고 있었고
[내가 언제] 내 고집, 내 임의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더냐 하지만 난 늘 그랬었습니다.
결국은 [내가 언제]라는 말 속에 [나의 의]를 담아 뽐내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솔하지도 못하면서
순전함과 더욱더 거리가 멀면서 안 그런 척, 아닌 척 위장했었습니다.
겸손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자리에서 교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자신의 결백, 죄 없음, 하나님을 향한 마음 등을 애써 주장하다보니
[내가 언제]라는 표현 속에 자신의 의를 드러낸 욥처럼
내가 늘 [내 의]를 드러내며 살았었던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내 스스로가 [내가 언제]라는 표현으로 [내 의]를 드러내 표현하다가도
남들이 나처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데
내 교만의 죄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아니 오히려 나의 표현 나의 행동은 뒤로 숨긴 채로
남들이 그렇게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을 비판하고 비난하여 정죄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엘리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엘리후가 되어서는 야단치고 정죄하며 심지어 비판과 비난을 서슴지 아니합니다.
나 자신은 겸손한 척하고 상대는 교만하다고 공격해댑니다.
나 자신의 겸손을 가장한 채로 남이 나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교만도 있습니다.
내가 교만하기에 남이 교만한 것은 못 봐주는 아주 어리석은 자입니다.
정말이지 아주 웃기는 성품을 지닌 채로 수십 년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많이 야기 시켰고 발가벗을 일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십자가 체험을 하면서 인격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고서야
내가 얼마나 엄청난 죄인인가를 알았습니다.
나에게 회개할 사건이 얼마나 많은가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벗을 곳이 없었습니다.
아니 벗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벗어 보았더니
나를 바라보는 눈들이 어제와 오늘이 달랐기 때문에 벗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QT를 했지만
QT를 해도 벗어지지가 않았었습니다.
묵상의 수준이 [내가 복음]수준이요 강해 설교요, 문자 해석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 QT를 해도 치유가 안 일어났고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였었습니다.
[회]만 했지 [개]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들 호에 승선하고 벗기 시작했습니다.
자유 함을 누리며 조금씩 조심스럽게....
숨겨진 나의 치부들을...아킬레스 건들을...껍질을 벗듯,,,허물을 벗듯...
그리고 치유의 역사와 함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QT가 나의 거울입니다.
묵상이 나의 죄를 보게 되는 투명한 거울입니다.
QT를 하니까
말씀으로 나를 보게 되고...
말씀으로 심각한 나의 죄 모습이 드러나 회개하게 되고
말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울이 되어줍니다.
QT 덕에 말씀이 들리고
QT 덕에 [예수 심장]을 지닌다는 것이 무엇이고
QT 덕에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QT 덕에 거룩을 향해 나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QT 덕에 내가 조금씩이나마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변화들 중에서
언제부터인가 [내가 언제]라는 표현을 잘 안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요
남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습성이 많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서 QT로 내 인생을 거울에 비추면서 거룩을 향해 정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