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보는 사람, 죄를 보는 사람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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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17
제목 : 의를 보는 사람, 죄를 보는 사람
성경 : 욥31:24-40
언젠가부터 내가 위축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어도 내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 자신감이 어디론가 살아져 버렸다.
우리들교회로 옮겼지만, 지금의 형편은 예전보다 못하다.
생활하는 것이야 어려움이 없지만, 삶의 질은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스무살 때에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이란 책을 읽고 난 후에
하나님은 나를 향한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겼었다.
생활이 어려워도, 사람들과의 붙이치는 부분이 있어도, 실연을 당했어도
난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이 내게 힘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막내다.
남들은 장남이 아니냐고 말들을 하지만, 난 막대다.
칭찬에 반응하고, 질책에 움추려 든다.
그래서 잘한다고 하면 더 잘 하고, 못한다고 하면 더 못한다.
그런 나의 특성 때문에,
QT는 자기 죄를 보는 것이다. 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마음에 담아 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위축된 나를 본다.
그래서 난 나의 죄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신앙의 목표이듯이
난 예수님을 닮아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으려고 한다.
의인이 의인으로 되어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QT다.
죄를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의를 닮아가는 길을 가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시점에 오늘 의로운 욥을 본다.
하늘에서도 인정하는 의로운 욥을 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항변하는 의로운 욥을 본다.
본문을 보면서 의를 보는 사람과 죄를 보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 궁금해 졌다.
어떤 것을 보는 것이 옳으냐의 문제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를 보든지, 자신의 의를 보든지 변하고 성장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인간의 입장에서의 의를 보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의 의를 보느냐의 차이이고
인간의 입장에서의 죄를 보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의 죄를 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떤 입장에서 보든지,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다.
난 나의 죄를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난 나을 위축시키는 죄를 보지 않을 것이다.
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에 맞게 생활를 바꾸어 갈 것이다.
난 나의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보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다.
내가 막내이기 때문에, 채찍보다는 달콤한 사탕이 나를 더 성장시키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