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작성자명 [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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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09
얼마 전, 어느 책에서 위선과 위악에 대해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위선보다는 위악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위선을 행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착한 척하고, 착한 일을 일부러 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위악을 하는 사람은
속으로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부러 악한 척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착한 척이지만, 보이기 위해 착한 행동을 하지만
속으로 자신이 착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행동한다면
속으로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하며 위악을 행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는가?
하고, 작가는 묻습니다.
이것을 읽으며 저는 위선과 위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전에 저는 위선이 느껴지는 사람을 보면 괜히 싫었는데
그게 그럴 것이 아니라고 고쳐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이 자신 안에 이기심이나 욕심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
약간의 따뜻함마저 느껴졌습니다.
저는 위악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느낀 어떤 자그만 분노들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랫동안 위선보다는
위악이 진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 역시 속으로 자신이 착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착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
위악적으로 행동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위선도 위악도 모두 꺼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이고, 보이기 위한 말이니까요.
하나님 앞에서는 위선도 없고 위악도 없지요.
하나님은 제 마음을 바로 보고 계시니까요.
저는 그분 앞에서 아무것도 감출 수 없습니다.
빌닷은 스스로 죄 없다고 말하는 욥을 비판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교만을 떨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어둠 속 밑바닥에 주저앉아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그가 교만을 떨 수는 없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는 빈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릴 뿐입니다.
아무도 자기 심정을 진심으로 헤아려주지 않는 것에 그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외로움 속에서 욥은 언젠가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고, 누구에게나 하는 말이 아닌
오직 욥에게 찾아와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의 분명한 대답을.
욥을 찾아오실 하나님이 또한 저를 찾아와 만나주실 것을 믿으면서
저도 내일을 기대합니다.
(기도)
주님, 비눗방울 불듯
기대에 부풀어
당신을 기다립니다
얼마나 더 제 마음이 비워지고
얼마나 더 제 마음이 가벼워지면
당신은 오시겠습니까
무심히
쌓여가는 땟국들
거듭 씻어내며
뽀득뽀득 닦아내며
이 외로움 속에서
하늘로 난 창 하나 활짝 열어둡니다
잘 익은 햇살 따라
저를 띄워봅니다
구름 새로 쏟아지는 소낙비로
풀잎 틈 여린 귀뚜리 소리로
당신은 오시겠습니까
당신 손을 잡으면
제 가슴은 또 얼마나 환해질까요
제 가슴은 또 얼마나 기뻐 뛸까요 (200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