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변론할 수 있는 자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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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8.07
욥기23장1절~17절 [하나님과 변론할 수 있는 정직자] 2006/08/07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이 없는 저는 하나님을 뵐 수가 없었습니다.
죄아래 태어난 저는 하나님을 뵐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독생자를
그리스도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이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생에 이르게 하시고 이후로 영원히 임마누엘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나를 끝까지 인도해 가실 성령님께 감사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도 하고, 탄식도 하고,
하나님을 찾아서 호소하며 변백하려 합니다.
자신이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변론하려 합니다.
자신은 주님의 걸음을 따랐으며,
주님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않았다 하며,
주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였다하고,
주님의 말씀을 육체의 양식보다 더 사모하였다 합니다.
육체의 날동안은 항상 욥을 향해 부러워 할 제 자신을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더욱 친해 지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쏙 합했던 다윗처럼
하나님과 더불어 이 땅에서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때론 원망도 하고, 탄식도 하고,
변백을 위하여 호소도 하는 저이길 원합니다.
그마만큼 하나님 아버지와 더욱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 원합니다.
성격따라 믿는다 는 표현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도 여러 모양입니다.
제가 386세대라 엄부 밑에서 자랐지만은
저의 자녀들을 대함에 있어서는 파파보이 , 파파걸 만들겠다는 우려의 소리를 듣습니다.
저의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시지 않으셔서 엄한 모습만 보였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시대적 환경이, 시대적 교육의 양상이 그러하였음으로...
하나님을 만날때도 마찬가지 인것 같습니다.
죄가 없었던 아담이 하나님을 만난 것이랑,
죄아래 팔렸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랑 그 차이
정죄 받은 자가 하나님을 대함은 두려움 그 자체임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충직한 종 이었습니다.
그 후로 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지만
엄위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그래서 두려운 하나님...
저는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을 만났지만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먼저 알지 못하였기에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알았지만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의 줄로 매달고 있음을 몰랐기에
하나님을 경외는 하지만 사랑함에는 어색한 저를 봅니다.
능력의 하나님은 잘 증거하지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에 대하여는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모든 선지자를 뒤로 하시고
주님께서 친히 하나님에 대하여 소개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바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시라고...
저는 저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알려주기 원합니다.
항상 주님과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원망도 하고, 탄식도 하고, 변백함으로 호소도 하라고.
하나님의 모든 능력은 사랑함에서 나오는 것이니 두려워 말라고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철든 자녀가 되어라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는 자가 되어라고.
주님,
하나님 아버지께 더욱 사랑받기 원합니다.
친밀한 사랑을 받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더욱 가까이 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원망도 하고, 탄식도 하고, 변백을 위한 호소도 하는
사랑안에서 두려움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 되길 원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책망도 듣고,
더 엄한 단련을 받은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는 자 되길 원합니다.
주님 나의 가는 길을 주께서 인도하여 주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