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에 노출되고 손에 닿는 것 모두가.....
작성자명 [김연경]
댓글 0
날짜 2006.08.04
햇살에 노출되고 손에 닿는 것 모두가.....<욥>21;17~34
아직 이른 아침인데
한낮이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온 집안에 그득한 햇살!
그리고 그 햇살이 닿는 곳에 노출되어 있는 물건들은 예외 없이 뜨겁군요.
싱크대가 뜨겁고 그곳에 쌓아 놓은 그릇들이 열을 받아 뜨듯하고
의자도 작은 소파도 그 위에 올려놓은 열쇠꾸러미, 손지갑, 노트,
내 가장 소중한 재산 목록...애지중지하는 성경책도 뜨듯합니다.
정말이지 대단합니다.
방안의 더운 열기에 쫓겨나 거실로 나오면 온통 따가운 햇살로 도배가...
그래서 집보다는 바깥이 좀 낫고 바깥보다는
공부방이 한결 좋습니다... 에어콘이 있으니까요...
부지런히 나눔 올리고 공부방으로 피서 가렵니다.
작년 여름에는 에어콘 없이 선풍기 하나로 버텼는데...
주님이 허락하신 은혜로 방마다 에어콘이 돌아갑니다...할렐루야!!
그렇다고 옥탑 방이 온전히 태양빛에 노출되어 있느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컴을 놓은 자리만 그늘이 져 있습니다...
비록 손바닥만한 그늘이지만
그 그늘을 의지하여 컴 앞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 그야말로 은총이요 은혜입니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주위는 온통 뜨거운 해살로 내리쪼이는데
컴과 의자 주변만 이렇게 그늘이 질 수 있는지...
감사의 조건이기도 합니다...아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몇 해 전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주일, 고등부 예배 후에 잠시 가까운 병원의 장례식에 문상을 다녀왔었습니다.
<이레 공부방> 어느 지체의 외할아버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하여
그 지체의 부친을 만날 겸하여 문상한 것입니다.
죽음의 현장!
오늘 욥은 누구에게나 죽음은 같다고 진술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평강하고 안일하며 그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 골수는 윤택하였고(23,24절)
어떤 사람은 죽도록 마음에 고통하고 복을 맛보지 못하였어도(25절)
이 둘이 일반으로 흙 속에 눕고 그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26)
그렇습니다.
문상차 들린 이 병원의 빈소에 안치된 그 많은 죽음들!
믿는 자도, 불신자도, 존귀한 자도, 빈천에 처했던 자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동일한 것은 생의 마지막이 죽음으로 마감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32절)
그는 흙덩이에 보탬이 되고
그 앞선 자가 무수함같이 모든 사람이 그 뒤를 좇으리라(33절)라고 진술한 바와 같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인생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육의 종착지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사후는 영의 시작이요 그 시작의 차이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죽으면 끝이 아니고 또한 누구나를 막론하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인데
그리고
주님의 심판 앞에서의 선택은 나에게 있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에게만 있는 것이요
그 심판 앞에서는 예수천당이냐 불신지옥이냐의 가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구원받아 오직 십자가 지고 그 좁은 길을 사는 것처럼 살다가
심판 앞에서 잘 했다 칭찬 받고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냐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가 될 것이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분명히 달라져야하고
예수 믿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행해져야 할 필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상의 그 자리가 전도의 현장이 되었었습니다.
처음의 내 생각에는
문상 후 상주인(아들이 없어 사위인 그 학생의 아버지가 상주노릇을 한다함)
그 학생의 부친 만 가볍게 만나고 오려 했으나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고
주님은 나를 사용하시고 내 입술을 열어 그의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와 나는 약 1시간가량 참으로 많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모태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다 실족하여 지극히 세상을 닮아 살아가는 그에게
(돌아가신 이가 은퇴하신 목사님이라 함, 큰딸과 사위 모두 모태 신앙이나 실족한 상태임)
세상에 취하고
알콜에 중독 되고 죄악에 물들어 있던 내가 회심하여 돌아 온 이야기를 하며
장례의 현장에서 왜 내가 그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는 가를
곡진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나누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의 자녀가 세상의 도덕적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진실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그래서 되물었습니다.
세상의 도덕적 기준이 무엇이냐
본받을 만한 세상의 가치기준이 진정 무엇이며 과연 있는가를 따져서 물었습니다.
기성세대들인 나와 당신네들이 만들어 놓은
타락한 문화, 정욕적인, 속물적인, 음탕하고 쾌락적인, 부귀영화가 성공과 행불행의
기준인 물질만능의 세상문화에서
당신과 내가 도대체 무엇을 보여 주고 있는데
세상의 도덕적 기준대로 살라는 말이냐고,
세상은 타락을 경쟁하며
도처에 술집이요, 대낮에도 불 밝혀 놓은 여관이요, 보이는 것이 온통 음란물로 넘쳐나고
광란하고 있는데, 인터넷 중독, 폰 중독에.... pc 방, 게임방. 타락한 노래방에서
밤을 지새우고 나오는 청소년들이 넘쳐 나고 있는데...
길과 거리거리에서도 마시고 취한 군상들을 보게 되고
가정에서도 취한 상태에서 부수고 폭력을 휘두르는 타락한 어른들을 보면서
꿈과 비전으로 살아야 할 그 착하고 신실한 청소년들에게 본을 보여 주기보다
상처나 주고 거리에 내 몰아 방황하게 만들면서
당신 아들에게, 많은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배우라는 것이냐고...
신랄하게 따져서 물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이끌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비난을 받는 교회들이라 해도
지금 세상 모든 문제들의 해답은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하나님에게로 회심하여 말씀과 기도로 살아야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중요한 것은
당신이 돌아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가정 예배드리고 함께 주일 성수하는 길만이
참 삶의 길이요 당신의 현실 앞에 놓인 그 숱한 문제가 축복으로 변하게 되는 길이라고
간증하고 증거하며 전했습니다.
말씀 안에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그러니 돌아오라고...
심지어 이런 험한 말까지
“맞고 돌아올래요. 맞기 전에 돌아올래요.”
사실 그는 매를 이미 맞고 있는데..
본인이 그 매의 의미를 모르고 있으니 안타까움에서...
욥이 말합니다.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 너희의 대답은 거짓뿐이로구나(34절)
그렇습니다. 주님!
세상의 위로는 헛되고 무가치할 뿐이고 거짓입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는 길만이 참된 위로요 정말로 잘한 상담임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길이,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만이
내 삶의 진실이요 소망임을 고백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