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작성자명 [오명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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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29
순전하며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욥을 설명하는 것으로 욥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자랑스러워 하실 만한 의인입니다.
이런 의인 욥에게 난데없이 찾아온 불보다 더 무서운 시험.
차라리 죽어 무덤에 가기를 원할 정도로 견딜 수 없었던 처절한 무너짐.
아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단말마 같은 심연의 아픔을 토해내는
욥의 절규를 대하며 이 시간 나는 젖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향합니다.
극심한 고통과 환난을 보며 욥의 삶을 인정해왔던 친구들까지
욥에게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무슨 죄가 있을 것이라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고야 어찌 이런 황당한 일이 임할 수 있겠는가
라며 함부로 판단합니다.
내가 고통 속에 있을 때, 나를 더욱 힘들고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은 먼 곳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 주위에 있는 나를 잘 안다는,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습니다.
이런 상황이 왔을 때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라는
욥의 고백처럼 비참하게 만들거나 조롱하는 자들을 향해 눈흘기며 아우성치지 말고
오직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는 자가 되어야함도 깨닫습니다.
옆에서 조롱하는 자들로 인하여 욥은 그들의 격동함을 항상 보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욥은 순전함에도 애매히 고난을 당했지만
사실 우리 인생은 욥과 같이 순전한 사람도 없고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깊은 속을 들여다 보면 모든 고난의 시작은 욕심, 탐심, 시기, 질투, 이기심이라는
무서운 내 자아(나를 부인하지 못하고, 나를 버리지 못해 지금도 자라고 있는 음부의 쓴 뿌리)가 싹이 나 올라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양재 목사님이 늘 들려주시는 말씀처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나 환난은 실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결론일 뿐입니다.
남들에게 믿음의 본이 안 되잖아요 믿는 사람이 가난하고 어렵게 살 때 믿는다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부자로 산다거나,
이웃으로부터 높임 받는 위치에 있다거나,
또는 온 가족이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등등의 것과는 별개의 사안인 것임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그분의 사랑으로 죄 용서함을 받고 거저 구원 받은 것입니다.
즉 죄 사함 받은 것이 주님 사랑의 유일한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외적으로 보여지는 소유 개념으로 주님 사랑의 유무를 확인하려고 하니
이 잘못된 기준 때문에
우리는 힘든 이웃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정죄하는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의 살아가는 인생 길이 아름답지 못해도,
남들처럼 다 갖추고 살지 못해도,
남들에게 다 있는 남편이 없어도,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모두 신실한 믿음의 자녀가 아직은 못되었어도,
주께서 나의 가는 길을 아시기에
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이를 믿고 나아가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과
끝까지 견디는 자에겐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임을 믿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며
주께서 보증물을 주시고 친히 나의 보주가 되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