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가운데 번뇌하는 욥,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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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28
욥기16장 1절~17절 [재 가운데 번뇌하는 욥,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 2006/07/28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욥의 이 믿음의 자기 선포 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시원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끔찍한 환난과 고통속에서도
거룩됨을 유지하려는 욥의 노력은
과연 성경에 이름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기록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욥이 아브라함 대신 믿음의 조상 으로 부름 받지 않았음이 큰 다행으로 여깁니다.
욥은
하나님이 나를 경건치 않은 자에게 붙이시며 악인의 손에 던지셨구나 라고
현재의 고난의 뒤에 하나님의 주도하심이라 합니다.
그러나 인정과 함께 하나님의 주도하심아래
자신이 겪는 처참한 상황들을 좋게 말하진 않습니다.
말하고 있다한들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나니
잠잠한들 어찌 평안라햐 하며,
하나님을 향한 원망도 아니고,
불평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상황을 고쳐주소서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 할 뿐입니다.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하면서도
자신의 정결한 심령을 지키기 원합니다.
오늘 욥기를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과 인도하심을 생각합니다.
사신의 나라, 우상숭배의 나라
애굽 아래서 죽은 신의 대리자로 부터 지배를 받지만
고기가 있고, 부추도 있고, 마늘도 있고, 향락도 있고, 문화도 있고, 나름대로 질서도 있고...
하지만 그곳은 유일 하게도 , 유일하신 분, 하나님을 부인하는 나라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찾으실 때
그들은 조상으로 부터 들었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 결정후 곧 바로 오는 탄압에 대하여
그들은 즉시 불평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인다고 불평할 일이 생기지 않음은 아닌가 봅니다.
천하의 영광아래서 왕따 를 당하기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따돌림은 불안한 맘을 갖게 하고 뭔가 의지할 곳을 찾게 하며,
심지어 조금 더 힘들지라도 다시금 무리와 함께 어울려
그들의 지배를 받고 안주하려 합니다.
안주는 편안한 것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첩경이라 생각합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수고 를 그칩니다.
단번에 올라감이 아니라, 날마다 나아가는 수고 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열가지 표징으로 보여주시는 순간,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조상의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애굽 과 애굽의 속의 고센 땅을 구별하심이
여지껏 알고 있던 애굽의 신들과 비교 할 수 없는
강한 하나님 이라는 인식이 뇌리에 각인 되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유월절을 통해 출애굽 합니다.
그날의 환호성은 대단하였을 것입니다.
어둠속에서
애굽의 지배아래 보호 받는 것처럼 여겼던 모든 첫것을
하나님께서 찾아가심에
애굽에 속했던 그들은 통곡하였고,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환호하며,
금과 은과 각양보석들로 꾸미고 사망의 그늘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불행끝 행복시작이라 여겼지만
앞은 홍해로 가로 막히고, 뒤는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을 되찾아 사망의 그늘속으로 가두려 뒤 따라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해서 출애굽 했지만
홍해를 건너기 전 까지는 애굽의 세력들로 부터 추격을 받습니다.
홍해를 통한 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확실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 자신을 장사하기 전에는
첫사람 아담의 죄성이 나를 물고 늘어져 사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홍해를 건넘으로 드디어 애굽의 세력을 벗어났습니다.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그날 본 애굽의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확실하게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을 다 이루셨다 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이 홍해에서 세례 받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야함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 길 사흘만에
물없음을 한탄하고 곧 바로 애굽을 그리워 합니다.
하나님의 주도하심 가운데 믿음의 행보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곧 바로 원망하는 불신앙(?; 불순종 보다는 불신에 가까운 것 같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쨌거나 시내산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백성 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 되셨습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다만 광야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과 순종 을 훈련 받는 훈련장일 뿐입니다.
이 훈련의 기간을 마치면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포도한송이를 두 장정이 막대기에 걸쳐서 들고 다녀야 할 만큼
비옥한 땅의 결실이 있는 곳,
가나안으로 인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주권아래 살고 있는 우리를
하늘 나라 본향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욥은 광야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욥이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방인이기에
기록된 대로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로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셨으니
욥은 날마다 양심의 가책으로 자기를 돌이키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런 욥을 하나님께서
분명한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시려 이 일을 허락 하심 같습니다.
그를 인과응보론에 가까운 일반적 은총아래 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주려 하심입니다.
욥은 아직까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뢰가 없는 듯 합니다.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번제나 그 다른 제사만을 열심히 드리려는 이에게선
하나님을 참으로 아~빠~! 하며 사랑에 겨운 부르심의 응답하는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광야의 훈련은
애굽에 대한 환상을 깨트림이 목적이요
육체의 필요 와 육체이 소욕 을 구분할 지식을 얻는 곳이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풍성한 번제나 풍성한 제물이 있는 제사가 아닌
겸손과 순종 임을 알게 하심에 있다고 봅니다.
재 가운데서 번뇌하는 욥의 모습을 보며
광야에서 열번씩이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과오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이 수고의 과정을 반드시 모두다 거쳐야 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 앞에서 신뢰를 통한 겸손과 순종 이라는
경외하심을 가짐이 조건 이건만
이를 알지 못하는 욥은
여전히 재 가운데 주변의 모든 친구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모습으로 번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모르기에
진정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그 사랑의 하나님이 주도하심을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는 몰랐습니다. 몰랐기에 번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주님께서 오늘 욥이 당하는 모든 환난과 고통을 감당하시며
의롭다 하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둘러싸여
저주의 나무에 매달려 죄아래 팔린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고통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
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게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의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욥의 고난을 보며
우리도 율법 아래에 있다면 ,
주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곤고한 날의 연속이요 번뇌로 통회하는 날의 계속 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의 모습과 가정에 처한 상황들을 돌아 봅니다.
현재 사업장은 감정적으로 손을 뗄수도 없는것이며
그렇다고 임금을 제대로 달라 요구 할 사항도 아닙니다.
공과금의 독촉도 한계에 달했습니다.
세명의 자식들에게 들어가는 영-혼-육의 양식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어제 까지도 여리고성을 입다물고 열세바퀴난 다 돌고 난후
다이긴 싸움에서 아간 처럼 행동했는데(계산후 장부가 맞지 않은 돈으로 우유와 빵을 사먹고 점심값을 챙겼음)
오늘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저를 좀더 강하게 붙드심을 느낌니다.
조금 철이 더 들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있다보니
아브라함에게 독자를 칼로 내리치라 명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려 하는 저를 봅니다.
효도하는 자,
부모의 마음에 합한자를 향한 사랑을 알기에,
하나님께서 급하게 역사하실 그 때를 끝까지 기다리려 합니다.
진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가는 인생을 살다
영생 갈것임을 다짐해 봅니다.
주님께서 두개골이 함몰되어지며
온몸이 짓이겨지는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오직 한가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시려 하셨음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애굽인지,
홍해를 지나고 있는지,
광야인지,
요단강인지,
가나안 땅인지
날마다 분별하며
시내산에서 알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하나님께서 보내어 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을 받고
주님의 부탁하신명령을 ,
날마다 나의 지경을 가나안으로 옮겨
굳게 서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하기를
쉬지 않고 행하는
저와 저희 가정되기를 ,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