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님의 부르는 음성을 못들은 이유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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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25
욥13:20-14:22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리이다 (13:22)
욥은 하나님께 자신을 불러달라고 간절히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미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택하시고 때가 되어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안에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주님안에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고통을 당한다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을 뿐입니다. 단지 우리의 고통이 너무크게 느껴지기에 하나님이 우리의 손을 놓았는가하고 의심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버리면 버렸지 하나님은 우리를 놓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기분대로 하시는 그런 변덕스러운 독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 안에서 불렀습니다. 우리와 영원한 사랑의 교류를 나누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귀애하시는지 모릅니다(요15:9).
오늘도 우리를 향해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 (요15:7)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안에 잘 거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때문입니다. 내가 있는 한 우리는 늘 내 자신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내안에 있는 것들로 소망을 삼으려 합니다. 내안에 소망이 없다고 고백하게 될 때 우리는 나로부터 탈출하여 하나님안에 있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고난을 주실 때 우리는 비로소 나는 쇠하여 지는 꽃이라고, 검불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서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당시에는 쓰지만 나중에는 얼마나 유익한지요. 고난이란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는 계기의 다름아닙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누구인줄 제대로 고백하는 일이야 말로 참으로 중차대한 사건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안에 거하게되는 것이기때문입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안에 거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거하게 됩니다. 내안에서 뻬맨絿척?하나님의 부르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부르시는 소리에 깜짝놀라 내가 대답을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화응을 함으로 우리 하나님께서도 말씀으로 화답하십니다. 진정한 교류를 주고 받습니다.
오, 우리를 이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은 과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안에 거할 때 주의 말씀이 내안에 살아 역사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오, 이 한 말씀이 들려지기까지 이 종이 얼마나 기나긴 세월을 보냈는지요. 이 종이 얼마나 오랫동안 내 자아에 포로가 되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