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날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 돈은 언제 벌어!!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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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25
맨 날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 돈은 언제 벌어!!<욥>13;20~14;22
내가 무지하고 둔하여 늘 영/육의 일을 구별을 못하고 실수합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은 육의 대답을 했던 것처럼
목사님은 영적인 질문을 던지고(예; 여러분은 춘화 자매가 부럽나요?)
나는 육적인 생각으로 엉뚱한 대답을 준비하는 것처럼
나는 늘 그렇게 실수합니다.
가끔은 나에게 나이를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묻는 의도가 다분히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나이를 잊어먹고 삽니다...
((갈렙과 같은 노년이라도 꿈과 비전이 있으면 청년이요
소년이라도 꿈과 비전이 없으면 노년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
이런 말로 답해주고 나이를 안 가르쳐 줍니다.
덧없는 인생, 허무한 인생,...
예전에는 마치 무슨 진리인양 즐겨 사용했던 말이지요,
많은 이들이 인생을 조금이나마 살아 초로의 나이에 들면
이 말이
마치 전매 특허인양 입버릇처럼 되 뇌이곤 하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보다 앞으로 살아 갈 날이 짧아진다.... 하면서
인생의 살아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무던히도 강조하고
역설하면서 이 말을 많이 사용했었습니다.
그렇다고 나의 마지막을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았느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초로의 나이에 예수님 믿고
말씀을 배우고 알아가며 많은 은혜 가운데 살면서
인생관이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흔하게 사용하는 말도 달라졌는데
인생을 말 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말이 이 말입니다
<<갈렙과 같은 노년이라도 꿈과 비전이 있으면 청년이요
소년이라도 꿈과 비전이 없으면 노년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
세상을 바라보며 그 곳에 가치를 두고 사는 삶은
대부분 속물적이요, 정욕적이기 때문에 바라던 바를 얻었을 때의 기쁨은 잠시 뿐...
잃었을 때는 잃은 것이 얻었을 때의 것보다 더 크게 보여
대부분 절망감, 허탈감, 허망함으로 인해
인생 무상함과 , 삶의 회의를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방황하게 됩니다.
예수님 믿기 전의 내 삶이 이렇게 얻기 위해 쫓아다니고
이것을 잃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 그러한 삶이었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고 오직 주님의 일을 하며 주께 영광 돌리겠다는 것에
가치 기준을 두고 사는 삶은
얻으면 은혜요, 잃으면 감사요, 늘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궁극의 소망이 천국에 있기에,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생각하기에,
필요에 따라 늘 채워 주시는 아버지가 계시기에,
말씀과 기도, 찬양으로 늘 풍성함 가운데 있기에,
그리고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 등은
내가 주님 앞에서 말씀의 인도 따라 바르게 서있기만 하면
우리 삶 속에 늘 보너스처럼 주시는 것이기에,
무상함, 회의감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물질이 우선이 아니라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이 먼저임을 고백합니다.=아멘=
욥이 오늘은 단 한번 뿐인 짧고 제한 된 인생을 한탄합니다.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1절)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 지고(일시적이요 한계성 있는 삶)
*그림자 같이 쇠잔하여서 머물지 아니 하거늘(흔적 없이 사라지는 인생)(2절)
*나무보다도 못한 짧은 인생(7,8,9절)
그렇기는 하지요 욥의 이 고백처럼, 그리고 세상의 보편적인 생각대로라면
우리의 인생이 장수하면 백 년이라 해도
짧고 제한 된 인생으로 느껴지고 소망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허무하다고 느껴 질 수밖에 없겠지요.
얼마 전 교제하던 어떤 집사님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이렇게 한 주간 모두를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매달리고는 언제 돈 벌어
먹고 삽니까.?-
내 말이
-하나님이 계시니 걱정없습니다.-
그 분 말이
-허긴 그렇기는 하지만-
이 분의 말을 비난하겠다는 의도가 절대 아닙니다.
나의 수고와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에서 위로한 말이요
그 분은 내가 염려 되서.. 세상의 가치대로 한 말이니..
분명 날 사랑해서 한 말이니...
결코 틀리다고만 할 수는 없는 말입니다.
가치를 어디에 두었느냐의 차이이이니까...
우문현답 이었다고나할까요?
다만 육적인 물음에 대한 영적인 대답이었다고 생각 됩니다
세상에 가치를 둔 이 말은 처음 듣는 말은 아닙니다.
내 아내에게도, 큰 누나(권사)에게도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입니다
그들도 나를 사랑하기에 한 말이고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또한 세상적인 가치의 보편적인 말이니까요....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그것을 땅에 묻고서는
헌신도, 희생도, 드림도, 나눔도, 추수도, 열매도 없었을 때
밖으로 쫓겨나 이를 갈며 한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내가! 달란트를 받은 내가! 무익한 종처럼 살수는 없는 것이기에...
나를 드려 작은 헌신이라도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레 공부방]입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보잘 것 없는 달란트로가 주님이 주신 것인데
나와 같은 도저히 사함 받지 못할 죄인을 택하여 부르시고
너는 내 것이라 하고 자녀 삼아 주셨는데...
그 달란트와 함께 나를 드리는 삶이 내 진정한 주님을 향한 소망인데...
그 분은 날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세상에 가치를 둔 삶을 살 겨를이 없고 허무함, 허탈함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허무한 삶을 한탄하던 욥이 3,4절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순전한 삶으로 드릴 그 때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소망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을 들어 살피시나이까.
나를 주의 앞으로 이끌어서 심문하시나이까.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눈을 들어 살펴 주시고 이끌어 심판해 주실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누구도 추하다, 정결하다 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이 할 수 있사오니
살펴보아 달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악창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삶이라 해도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다면....
악창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하더라도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삶이라면...
지금의 삶이 값진 것이니 그 삶이 바로 축복된 삶이라고 고백합니다.
제가 영적악창이었을 때
제가 영적문둥병이었을 때
욥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아멘=
그리고 생과 사는 주님의 손에 달린 것이니(5절)
*품꾼같이 그 날을 마치게 하옵소서.(6절)
비록 짧고 제한 된 삶이라 해도 삶 속에서의 진정한 평안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오니
오직 바라옵는 것은 품꾼이 바라는 달콤한 휴식과 같은 그런 삶을
주님의 품 안에서 안식과 평강으로 누리며 살게 하소서=아멘=
그리고 욥은 이어서
사람은 죽어 소멸되고,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10,11,12절)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제한 적 삶에 대한 고백이 나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 영접 후에는 나이를 잊고 삽니다.
어떤 이는 늙어 가는 증거라고 합니다만...
내가 주 안에서 주의 일을 도우며 사는 동안에는 나이가 중요하지가 않다는 것을...
주님이 쓰실 때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모세처럼, 갈렙처럼,
노년이라도 갈렙은 꿈과 비전을 간직하고 청년답게 살았습니다.
독수리 날개 쳐 오르듯 내 인생의 역전 드라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일을 하다가
주님이 ‘너 이제 올라와’ 하시면
지금의 믿음 그대로...순종하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내 꿈과 비전이 오직 주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