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보는 관점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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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22
욥11:1-20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11:11)
하나님은 다 보시는 분이라고 소발은 힘주어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눈이 있으시기에 보지 않을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눈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극히 제한된 눈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공간적으로도 무한하게 볼 수 있으시고 시간적으로도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무한하게 볼 수 있으십니다.
이런 눈을 가지신 하나님앞에 악한 자가, 죄인이 숨어 피할 곳이 있겠습니까. 다 주목하고 있다고 합니다(11:1).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다른 신들처럼 죄악에 상관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매우 상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냥 죄악을 상관치 않는 정도가 아니라 죄를 찾아다니?정도로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소발이 가지고 있는 신관(神觀)인듯 합니다.
그러나 소발의 신관은 하나님이 죄인을 찾아내어 벌을 주시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으로, 죄와 상관하시기에 죄에 따라 벌을 주시는 분이실진데, 하나님을 우리의 죄에 따라 심판을 내리시는, 벌주시는 하나님으로 간주합니다.
물론 우리가 비록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불꽃같은 심판아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심을 설파하지 않을 수 없네요. 하나님은 다 보시되 어떤 관점으로 우리를 보시는냐 하면 사랑의 눈으로 보십니다. 이는 하나님은 사시되,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오직 한 사랑으로 사시고 계시기에 하나님은 진정 우리가 거할 영원한 큰 한 마음이시며 큰 한 사랑의 품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상관치 않으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우리의 죄를 가려내기 위해 우리를 이렇게 다 보고 계시는 분이시라. 글세요, 그러나 아니올시다.
오, 이렇게 힘주어 말하는 이 종도 얼마나 소발같은 신관(神觀)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형제를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심판의 눈으로 정죄하는 죄를 여전히 범하고 있는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악한 종입니다. 이와 같은 악한 종을 벌하지 않으시고 오늘 이 순간까지 살려주신 우리 하나님은 과연 사랑이 무궁토록 넘치시는 분이시옵니다.
오 우리가 과연 허망한 자이지만(11:1) 허망하다하지 않으시고! 귀애하심으로! 이 악하고 몹쓸 죄인을 영원한 심판에서 영원한 사랑의 나라로 옮겨주신 우리 성삼위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에 이 종은 오늘도 할 말을 잃습니다. 종을 보시되 종의 죄악을 찾아내기 위해 그래서 종을 멸하려고 종을 보고 계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지(確知) 하고 보니, 참으로 이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인생이 지극히 유식(有識)해졌음이여, 오 무지몽매하든 자들이 밝고 시원하게 저 창공의 주님의 붉은 단심(丹心)의 심장을 다 치열(熾烈)하게 의시하는구려. 오, 만세만계(萬世萬界)의 主께서 사랑이시란 이 놀라운 인식(認識) , 진리인식(眞理認識)이여,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러므로 주의 모든 뜻과 언행이 모두 그 깊은 근저에 사랑이 자리잡고 있음이며, 그가 베푸시는 세(世)와 계(界)가, 그가 베푸시어 여시는 만세계(萬世界)와 만계(萬界)가 본질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랑이외에 다름 아님임을 우리 알겠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