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M의 다른 힘!!!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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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21
7월 21일 금요일 욥기10:1~22절 말씀
본문을 나의 삶에 적용하자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나는 욥 일 수 없다고
이고난을 감당할 수 없다고
빨리 이 고난의 터널을,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스치고프다고...
율법아래, 아직도 종노릇하고 있든 욥,
하지만 그가 하나님께 아뢰는 내용을 보며
그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같고
나는 여전히 초등학문에 매여 종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듯 합니다.
종과 자녀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나는 계약관계요, 하나는 직접 낳은 사실의 근거가 있는 것 아닌가...
계약관계는 상방의 이행을 전제하지만
자녀는 사랑을 받는 대상일 뿐인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원과 상급의 차이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받지만,
믿음으로 행한자, 믿음으로 심은 자에게
뿌린대로 거두고, 행한대로 갚음을 받는 차이로 압니다.
내가 고난 당함의 목적은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심같이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함이 목적입니다.
주님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의 영광이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저가 QTM을 통하여 배운 귀한 교훈은
구속사적으로 말씀을 통독하는 것 입니다.
이는 일반 교회에서는 체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냐하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암송하고 있는 말씀들은
앞뒤의 상황을 무시한
그저 내가 달리는 말씀을 딱 잡았으면 하는 것들(죄송한 표현)입니다.
문론 워낙에 파워있는 하나님의 말씀 이기에
역사하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하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주님께서 직접 지적해 주신 내용입니다.
또한 우리는 열명의 문둥병자가 주님의 명령을 듣고
다 제사장에게 가던중 모두가 고침을 받지만
이방인 한 사람만이 주께 돌아와 사례하였고,
그로 인하여 구원까지 받은 기록을 봅니다.
저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보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도 행하여 보았습니다.
능력을 갖는 말씀도 많이 암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의 문제들은 근원적 해결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오랜 기간의 기도,
매일 수십장의 말씀 통독(상고가 아님),
모든 예수이름으로 모인곳의 참여 등...
그로 인하여 많은 심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본질적 회의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무렵
목사님 저서 복있는 사람은 을 하나님께서 보게끔 하셨습니다.
그 곳에서(책) 발견한 점,
이전에는 나에게 있는 모든 고난의 상황들은
주님께서 채찍을 맞음으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심으로
이미 모두 해결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모든 병에서 자유,
가난의 저주에서 자유, 자유 자유... 하면 된다고 외쳤습니다.
뭔가 기도하고, 부흥회에 참석하며, 열심낼 때는
그 믿음이 역사하는 것 같고, 이루어 질 것같았습니다.
하지만 조금의 낙심될 상황 앞에서는
여지없이 돌위에 돌 하나도 쌓임없는 것처럼 깡그리 무너졌습니다.
전, 목사님의 저서를 통해 분명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저 사실 목사님 너무너무 3535합... 그냥 그렇게 되더라구요)
나에게 임한 고난을 인정하는 것은
그 고난을 당해야 하는 당위성을 인정함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내가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정결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알라!, 알라!, 알라! 는 것임을.
저에게 이 사건은(저서를 본것) 엄청난 복음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아야 할 목적을 가져야 했었는데,
문둥병이나 고침을 받고자 찾아왔든
아홉명과 똑 같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만을 당하고 이겨내어 원상복귀에 힘쓰는 자가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하여 나를, 가정을 , 이웃을 보혈로 정결케 하라는 것임을.
그러므로 화평케하는 복음의 위력을 나의 지경을 통해 밝히 알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지 않으면
나의 범사를 예수 이름으로도 무릎 꿇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속사적인 통독은
성령의 역사하심의 흐름이 있습니다.
길갈의 돌들만 가진다고 효능이 있음이 아니라
그 역사를 낱낱이 알아야만 믿음으로 역사함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의 수치를 반드시 저의 대에서 요단강에 잠재우고
약속의 가나안 땅을 정복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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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엊저녁 밤늦게, 큐티 나눔을 본 아내가
오늘 아침 출근하는 저에게 절대치의 고난 에 대하여
나눔을 올린 지체에 대하여 말함을 듣고
절대치의 고난... 을 묵상하며 출근 했습니다.
절대치의 고난은
내가 통과하여야만 하는 의례적 과정이 아님을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에 기록됨 같이
이미 주님께서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담당하셨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종노릇 하듯 고난을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내영혼,
내가정의 영혼, 내 자손들의 영혼,
내 이웃들의 영혼을 정결케 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다보니 고난도 함께 감당하는 것.
화평의 복음을 누리기 위한
주님으로 옷입는 과정에서
죄악의 옷을 벗는, 끊어내는,
너무나도 착 달라붙은 죄악의 누더기 옷이기에 벗기가 좀 괴로울 뿐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피에 푹~~~ 삶아서 절로 벗겨지게 하시면 좀 수월할테죠...
푹 삶는다는 의미는 피에 있는 생명을 나의 것으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으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주님의 모든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고,
또한 그 말씀은 명령이라고 하시며,
명령을 준행하는 자에게 생명의 역사가 있다하십니다.
저와 저의 가정이 주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 지사이다 순응한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의 범사를 순종 시킬 수있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는 저와 저의 가정,
또한 우리들 지체 되기를
기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