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산 길/욥기9장 님의 침묵 은 제가 지금까지도 외우고 있는 애송시 중의 하나입니다.
시인은 일제 강정기에 나라 잃은 설움을 구구절절 애달프게도 읊조리고 있는데
욥기 9장을 묵상하다가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 이 생각났습니다.
욥은 마치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을 청하는 것처럼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 재심을 요청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욥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동안 친구들이 강요했던 결론을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고 또 인간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변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같은 황홀할 만한 사랑(민족이든 진리든)을 깨달은 순간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져 버려서
시인의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늘이 무너질 만큼의 절망이 있지만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붓는다니
그 용기가 가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향한 인간의 다짐일 뿐이지 결코 고난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아,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한 것 처럼 고난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올 수 있습니다.
아니 털어서 먼지나지 않을 만큼 살지 못한 것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 육척 사이에 손을 얹을 판 결자가 없기에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침묵만을 휩싸고 돌뿐입니다.
크고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을 보고
절망과 좌절에 사로잡혔던 대제사장을 기억합니다.
주께서 폭풍을 통해 나를 꺾으시며 내게 많은 상처가 나도록 버려두시기도
하시지만 때가 되면 악인과 의인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 주님,살면서 우리에게 닥치는 일들을 다 이해할 수 없을 때
내가 내 자신을 변호할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내릴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관이고 또한 우리 하나님이 천하무적인 것을 믿기 때문에
내 빌닷을 잠잠히 하겠습니다.
2006.7.20/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