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를 다녀온 뒤 첫 큐티입니다.
작성자명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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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20
수련회를 가기 전 꿈을 꾸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던 도중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너무나도 눈부신 빛이 쏟아져 제 몸을 휘감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가는 휘문고 담벼락길을
한 남자와 함께 걸어갔습니다.
이 꿈을 꾼 뒤
부끄러운 말이지만
수련회 주제인 ‘Love’처럼 인연을 만나게 되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절 휘감은 그 빛이 너무도 은혜로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게 있어서 날 부르신다는 생각에
폭우에도 짐을 챙겼습니다.
첫날에도 둘째날 아침까지도
어떤 은혜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중 하정완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꼴찌인생’을 살던 그분의 말씀이
‘일등인생’을 살던 제게 찾아왔습니다.
‘교인들로부터 내#51922;김을 당하셨던 그분의 아픔이’
버림받은 기억이 있는 제게 찾아와 빛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 은혜를 고백하기 위해
이곳에서 첫큐티를 시작합니다.
제가 살던 곳은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가 즐겨말하던
세렌게티의 정글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곳.
나의 아이디어가 동료들보다 나아야 살 수 있는 곳.
PT에 이겨서 다른 회사를 떨어뜨려야 하는 곳.
바로 ‘광고회사’였습니다.
6년 전,
회사에 입사했을 때
저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메이져대행사에서 뽑은 카피라이터의 수가
대한민국에 열명도 채 안됐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는 것.
남보다 좋은 기회를 얻어 유망한 카피라이터로 인정받는다는 것.
연예인과 자주 어울리고 인생 쿨하게 산다는 것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생의 계획도 치밀하게 짜여 있었습니다.
26살엔 대학원 졸업
27살엔 다른 대행사로 이직
28살엔 강의 뛰기
29살엔 유학가기
32살엔 돌아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되기
차곡차곡
‘일등인생’을 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하며
하나님을 잊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처구니 없게도
회사로부터 구조조정을 당했습니다.
IMF만큼의 위기가 닥쳐
밤낮없이 일했던 회사가
함께 일했던 선배들이
먹고 살기 위해 나가라고 하더군요.
“제가 능력이 없어서 나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전 나이가 어리고
딸린 식솔이 없어서 아닌가요?”
말은 당당하게 하고 나섰지만
막상 나오니 길바닥에 버려진 기분이었습니다.
사오십대의 남자들이 겪는 아픔이
왜 이십대의 제게 찾아왔는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회로부터 당한 배신과
사람으로부터 당한 치욕과
스스로에 대한 자멸감에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늘 잘나고
강하고
똑똑하고
밝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아프고
약하고
슬픈 모습을 보일 줄 몰랐습니다.
그때 영화 말아톤을 보고 펑펑 울었었습니다.
“아이가 아픈데도 아프다는 말을 안해서 아픈 줄을 몰랐어요.”
가장 친한 친구 앞에서도
‘나 아파’
이 말 한 마디를 못해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핸드폰에 저장된 300명도 넘는 사람들 속에서
전화를 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사람을 믿어선 안 된다
세상에 믿을 건 돈밖에 없다 라는 생각에
죽을 듯이 프리랜서를 뛰었습니다.
6개월에 3천만원 가까운 돈을 벌었습니다.
당연히 몸이 남아날리 없었죠.
채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독기로 카피를 써내려가
화병을 얻고
목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아픔에
울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어머니가
‘이곳에 있다간 네가 죽겠구나’하여
영국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휴식을 핑계로
여행과 쇼핑과 유흥을 즐기다가
지난 해 11월
한국의 회사 두 군데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잠시 중단되었던 ‘일등프로젝트’가 재시동되었던 거죠.
하지만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는지
저는 욥처럼
제 마음에 난 욕창을 보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왜 제게 카피라이터의 달란트를 주셨나요.
왜 저를 내쫓으시고 영국으로 보내셨나요.
왜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다시 한국으로 오게 하셨나요.
왜 저를 이 정글 속으로 보내셔서 다시 칼을 들이밀게 하시나요.”
친구를 따라서 겨우 교회를 나오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늘 투덜댔습니다.
“왜 저 목사님은 늘 여자와 가정 얘기만 하셔?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성공과 힘의 은사를 갖고 계신 목사님이야.”
일하는 능력을 저주하면서도
여전히 저는 성공을 부르짖고 있던 것입니다.
하정완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남들 따라가다가
자기 페이스 놓치다가
심장이 터져서 죽어요.”
“은사가 없는 목사라고 병에 걸린 노모 옆에서 쫓아내는 나쁜 교인이 되지 마세요. 꼴찌도 안아주세요.”
목사님의 말씀 속에
화병을 얻어가며
심장이 터져가며
일등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던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목사님의 아픔 속에
세상의 배신감에 치를 떨며
유기견처럼 낯선 땅을 헤매던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목 놓아 울었습니다.
욥처럼 하느님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아파요. 너무 아파요.
혼자서 떠돌아다니느라...
혼자서 상처를 닦아내느라…
너무 무섭고 외롭고 두려웠어요.
다시는 제 손을 놓지 말아주세요.
설령 제가 당신 손을 놓더라도 그 손 꽉 잡아주세요.”
시원하게 치유될 줄 알았는데
이 가슴이 아직도 쓰린 걸 보면
한꺼번에 치유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도
마라톤을 하듯
천천히
천천히
하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수련회가 끝나고
회사 선배들에게 말했습니다.
“비록 제가 살았던 세상은 비열했지만
후배들이 살 곳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련회때 제가 얻은 은혜는 ‘love’가 아니에요.
제가… 착한 광고인도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요.”
제가 사회로부터 받은 아픔이 무엇인지를
환히 보고 나서야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이
하나씩 가슴에 박히더군요.
왜 하느님께로 가는 길에 ‘동반자’가 필요한 건지…
결혼을 미루고
이혼과 불륜이 난무한 광고판에서
말씀으로 이룬 가정과
하나님을 닮은 사회를 보여줘야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 생각에
저와
사회와
하나님을 향했던
‘원망의 손가락을’ 거두었습니다.
큐티도
자기고백도 처음이라 어수선합니다.
욥이 고난과
그의 발버둥과
그의 억울함의 호소를 보니
어쩌면 나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예뻐하셨던
그래서 고난을 주시고
수련회로 이꾸셨구나 하는 생각에
적고 갑니다.
모두... 깊은 은혜와 사랑을 느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