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닷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작성자명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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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18
욥 8:1~22
고난이 왔을 때 제일 힘든 것이..
고난 그 자체보다,
그리고 제 자신이 힘든 것 보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지금도 저의 친정 엄마는,
어쩌다 저와 통화를 하면..
뭘 먹고 사느냐,
굶고 있는 것은 아니냐,
너희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하시며 저희 부부 보다 더 힘들어 하십니다.
제가 아무리,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산다며 안심을 시켜 드리고,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해 설명을 해도 언제 들었냐는 듯 사명감을(?) 갖고 염려를 하십니다.
그래서 제 마음을,
무겁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희 형편이나 상황은 전혀 생각지 않고,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라고 하며 작은 가게라도 내 보라는 친척도 있고..
어떤 친구는 이러는 제가 해석이 안되고 감당이 안되는지,
아예 저와의 연락을 끊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금껏 엘리바스나 빌닷의 역할을 했던 제가,
저의 환경에서는 어떻게 반응 하는지 지켜 보기도 합니다.
이렇듯 세상은,
고난 앞에서,
저 마다 삶의 결론을 드러내는 목소리를 냅니다.
빌닷이 논쟁의 아들이라는 뜻이라고 하듯이,
저 마다 하나님과 논쟁을 하고,
사람과 논쟁을 합니다.
그 논쟁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저의 친정엄마나 친척 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논쟁을 합니다.
그러나 논쟁은 논쟁으로 그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논쟁은 논쟁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 빌닷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논쟁을 잘 해도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빌닷은,
이 세상에 의지할 것이 없어서,
거미줄이라도 의지하고 싶을 정도로 절박한 자의 아픔을 모릅니다.
돌무더기에서 뽑힌 뿌리가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 모른체 한다고 했는데,
다시 돌아 오기를 기다리며 그의 자리를 마련해 놓는 돌무더기도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않으신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악한 우리를 붙잡아 주지 않고 악을 악대로 갚으셨다면,
우리는 벌써 이 세상을 떠났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고 했는데,
빌닷은 어떤 것이 미약하고 어떤 것이 창대케 되는 것인지를 모릅니다.
고난 가운데,
심히 창대한 주님을 만난다는 이 비밀을 모릅니다.
믿음 없는 옛 시대의 사람들이 터득한 일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는 악을 행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정말 광풍 같은 말은, 욥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 논쟁을 벌여 고난 겪는 친구를 아프게 하는 자신의 말이 더 광풍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나...빌닷이 아무리 모르는 것이 있다 해도,
오늘 제게 듣게 하시는 빌닷의 소리가 있다면 그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저의 적용일 겁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과 논쟁하는 저의 속성을 제해 버리기 위해 들어야 할 겁니다.
고난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해 주며,
고난이 부끄럽지 않은,
공동체를 주신 하나님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유능한 논쟁가인 빌닷이 모르는 것을,
저 같은 자에게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