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작성자명 [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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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17
며칠 전 아는 언니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이 분은 성경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쓰여진 시대를 따져보아도
도무지 그것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저 사람들이 써놓은 것이라구요. 그리고 성경에는 모순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언니의 결론은, 어차피 살아가는 모습은 같은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인생에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닌데)
하나님을 왜 믿어야하는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나누면서... 말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을 보며... 저는
이 언니가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예수님을 만날 때야(체험하고 알 때야)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래 전 제가 신앙을 몰랐을 때 가진 생각들을 이 언니 속에서 보았습니다.
저는 언니 마음을 이해합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왜 그렇게 하나하나 저에게 묻는지...
그리고, 제 과거의 아픔을 공개된 신앙게시판에 썼다고 말했을 때
언니의 반응은
힘들었을 거라고 이해는 하지만... 그런 아픔은 흔하디흔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에게 지난 아픔에 대해 왜 굳이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하느냐고요.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지요.
듣고 보니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아픔을 끄집어내어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것은 저에게도 별로 유익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아픔에 대해 말을 안 하는 것은 오히려 저에게 편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이해받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사람들이 가진 편견을 부수고 싶었습니다.
그 아픔을 말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감추려는 태도가 싫었습니다.
어린 일곱살짜리 아이가 받았을 고통을 대신 말해주고 싶었구요.
그러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하구요.
욥은 사람들에게 자기 아픔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했습니다.
이사야 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어제 예배당에서 이 말씀 들으며 다시 느꼈습니다.
아픔은 오직 하나님께만 말씀드려야 한다는 것을.
언니와 이야기 나누고 나서
제가 얼마나 과거와 달라졌는지를 보았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졌고
사는 모습이 달라졌다는 것을.
저에게 여러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욥은 오늘 살기를 원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절망의 밑바닥에 떨어져서 그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지요.
욥이 주저앉아 탄식하며 정말로 바란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왜 자신에게 이런 아픔을 주셨는지 알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아픔을 헤아려주고
같이 눈물 흘리며 기도해주기를 바랬을 겁니다.
욥은 지금 탄식하지만... 어느 날,
아픔은 과거가 되고
다른 모습, 다른 가치관으로 일어설 때가 오겠지요?
언니를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꼭 예수님을 만나서
뭐라 설명할 수는 없으나 마음으로 믿어지게 되기를.
그때는 설령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성경말씀이 뜨겁게 와 닿아 깊이 감동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