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주제넘게 아는 것처럼 한 것 용서하소서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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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14
욥5:1-27
볼지어다
우리의 연구한 바가 이같으니 나는 듣고 네게 유익한 줄 알지니라
(5:27)
욥이 곤경을 당했을 때 찾아온 사람들은 욥의 친구들입니다. 욥의 곤경의 소식을 들은 사람이 많았겠지만 아마도 이들이야말로 진정 욥을 위로하려고 멀리서 찾아온 순수한 욥의 친구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7일 동안이나 침묵을 지켰습니다.그러다가 욥이 먼저 침묵을 깨뜨렸는데. 침묵 후의 욥의 첫 반응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며 탄식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친구 중의 하나가 먼저 입을 열며 욥을 충고하기 시작합니다.
첫째 친구 엘리바스가 욥이 곤경을 당하는 것은 자기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더 이상 탄식하지 말고 하나님의 징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문제를 털어놓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더욱 더 너를 축복해주실 것이라 합니다. 엘리스바스의 충고의 내용이 겉으로 보면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욥이 당한 곤경의 원인에 대해 너무 간단히 추정해 버립니다.
저는 오늘 묵상에서 과거에 너무 우매했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경험을 했다 해도 상대방이 경험하지 않았을 경우 내가 말해주어 봤자 별 유익이 없다는 것을(특히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일에 대해, 이것만은 이야기 해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오히려 이야기 해 준 내 쪽에 더 문제가 있다고 판단 받기가 쉽상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내지식과 내경험으로 상대의 문제를 포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욥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욥의 곤경은 자신의 죄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런 큰 고난이 내게 오는 것일까 입니다. 사실, 욥을 더욱 더 고통스럽게 한 것은 자기가 고난받는 이유를 진정 몰랐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그가 나중에 이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만...!!)(42:5-6), 고통의 원인만 안다면 당장이라도 하나님앞에 나아갔을턴데 말입니다.
그런데 친구 엘리바스는 네가 죄를 지어 이런 고통을 당하니 당장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으라고 충고합니다. 내 충고가 상대를 치유하기보다도 오히려 상대를 흥분시키며 화를 내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를 도우려다 오히려 관계가 정말 나빠지는 것을 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확신이 없으면 침묵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문제는 그릇된 확신이 그릇된 성급한 결론을 갖게 합니다.
내가 경험을 했다 해도 상대방이 경험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성급하게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가 경험할 때까지 기다려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이가 몰라줄 때 답답합니다. 그리고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 경험이 내 지식이 표피적일 수도 있고 문제의 핵심을 비껴갈 수도 있습니다. 욥의 문제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내 경험과 내지식으로 성급하게 다른 이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유혹에서 잘 인내하기를 소원합니다. 방관적인 침묵은 분명 잘 못된 것이지만, 같은 죄인의 심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타깝게 조용히 지켜봐주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방관적인 침묵을 많이 합니다. 성급하게 말을 하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요것도 회개해야 되겠지요.
우리는 아는 것보다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마치 무엇이나 다 아는 것처럼 스스로 잘못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느 물리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고래로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이 이룬 과학의 업적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세게에 대해 마치 이 세상에 있는 바닷가의 모든 모래사장의 셀수 없을 만큼 많은 그 모래알 가운데 하나의 모래 알 정도의 량도 되지 않습니다.
보이는 세계도 이러한데... 오,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하며...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보이는 세계여, 더욱 보이지 않는 그의 세계여, 주재시여, 여태껏 제가 주제넘게 아는 것처럼 한 것 용서하고 또 용서 하소서. 무엇을 안답시고 오늘도 이렇게 성급하게 많은 말을 합니다.